[번역/소설]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1장 (5)

쿠악이 2023. 12. 11. 17:43

그림작가: 이고르 라진스키

 

 

표도르 클리모프 소령은 새벽 일찍 일어났다. 잿빛 하늘이 바다 위로 드리워져 있었고 수면도 회색빛이었다. 저 멀리 동쪽 지평선에서 조금씩 금빛이 반짝이며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에 점차 색이 채워지는 것 같다고 클리모프는 생각했다.

그는 보통 깃발이 게양될 때쯤 잠수함에 출근했지만 오늘은 더 일찍 나가야 했다. 어제 부두에서 여단장 코로빈 대령이 그에게 말했었다.

"표도르 막시모비치, 내일 아침 7시까지 모함으로 늦지 말고 오게. 자네와 나, 레츠키까지 함께 바옌가로 가서 파일럿들을 만나볼 생각이니. 곧 있을 잠수함 훈련에서 우리랑 그들의 행동을 맞춰봐야 하네."

클리모프는 서둘러 출근 준비를 했다. 그의 상관이자 사라토프 출신 동포인 예브게니 아르노비치 코로빈은 존경스러운 인물이었지만 매우 엄격했기 때문에 가끔은 두려웠다. 코로빈은 출근하면 선수에서 선미까지 배를 돌아다니며 문제점을 찾아내고 문책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는데, 그는 생전 아버지가 물려준 하모니카로 가끔씩 슬픈 선율을 연주했다. '하모니카를 연주할 때면 마치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 같네.'라고 언젠가 고백한 적도 있었다. 코로빈은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고 싶었지만 그녀는 남편이 묻힌 고향을 떠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아들아, 너는 이제 북쪽에 있고 너의 배도 그곳에 있지 않느냐, 내 땅은 여기에 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를 못 뵌 지 2년이나 지났네. 이번 여름에 한 번 뵈러 가야겠어.' 클리모프가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어제 클리모프는 코로빈에게 해군대학교에 입학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코로빈은 두 명의 지원자가 더 있으며 한 명만 보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내일 함대 사령부에 가서 골로프코 제독과 얘기해 보겠네. 표도르 막시모비치, 충분히 자네가 될 수도 있어. 자네의 잠수함 상태는 양호하고 승조원들은 단결되어 있으며 새 어뢰를 성공적으로 테스트하지도 않았나. 마음 굳게 먹게."

클리모프는 자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옷을 입고 뜨거운 레몬티 한 잔을 급히 마시고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때 침대 옆 탁자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표도르가 수회기를 빼들었다.

"표도르 막시모비치 클리모프?"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예 접니다."

"집에 계셔서 다행이군요. 어제는 연락이 안 되던데 근무 중이었나 보죠?"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클리모프가 낯선 사람의 말을 끊었다.

"아스타코프, 표도르 아스타코프라고 합니다. 당신과 같은 이름인... 아르한겔스크 출신 선박 항해사입니다. 3일 동안 출장으로 무르만스크에 와있는데 한번 만나 뵙고 싶습니다."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일단 들어보시죠. 후회 안 하실 겁니다. 당신 아버지에 관한 중요한 소식이 있습니다."

클리모프는 자고 있는 가족들도 잊고 자신의 아버지 막심 클리모프는 이미 1939년 12월 겨울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격분하면서 말했다.

"당신 아버지는 살아계십니다. 우연히 그를 만났고 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내일 밤 떠나야 해서 오늘밖에 만날 시간이 없습니다."

아스타코프의 침착한 답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클리모프는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머릿속은 '살아있어? 살아있다고!'라는 외침으로 가득 찼고 심장이 터질 거 같이 두근거렸다.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니!'

"몇 시에 어디서 볼까요?" 클리모프는 마침내 정신 차리고 물었다.

"오늘 저녁 9시에 부두에서 봅시다."

"좋습니다." 클리모프가 대답하자 즉시 전화가 끊겼다.

클리모프는 더듬거리며 의자를 찾았다. 그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었다. 방금 일어난 게 정말 현실인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고 식은땀이 흘렀다.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소식은 분명 기쁜 것이었지만 속이 복잡했다. 이제야 클리모프는 아스타코프가 어디에서 전화를 건 건지 정확히 묻고 당장 만나러 갔어야 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를 만나기로 한 저녁까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거 같았다. 클리모프는 전쟁영웅으로 죽은 아버지를 항상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있고... 그는... 클리모프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아내가 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깨있었다면 상태가 이상하다고 걱정했을 테니.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아내 다리아는 깨어있었다. 그녀는 누워서 창밖의 바닷소리를 듣다가 남편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항상 그랬듯 함대에서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했다. 그런 전화가 온 날이면 남편은 서둘러 집을 나섰기 때문에 오늘도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만 아직까지 클리모프가 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무슨 일이지 궁금한 다리아는 드레싱 가운을 걸치고 부엌으로 향했다.

"더 자지 왜 일어났어." 방에서 나온 다리아를 보고 표도르가 난처하게 말했다.

"쉿, 애 깰라." 다리아가 옆에 앉아서 얼굴을 쓸며 물었다. "땀 좀 봐, 무슨 일 있어?"

"괜찮아. 아무 일도 없어." 표도르가 애써 웃어 보였다.

"누가 전화한 거야?"

표도르는 동이 트고 있는 창밖을 바라보며 다리아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냥 지금은 아무것도 묻지 마, 알았지?"

표도르는 옷걸이에서 모자를 빼고 출근하기 위해 다리아를 돌아봤다. 다리아는 여전히 답을 기다리고 있는 표정이라 표도르는 조금 짜증이 났다.

"나중에 말해준다니까! 사람이 말 좀 하면 듣지 왜..." 표도르는 말을 끓고 손을 신경질적으로 저었다.

표도르가 아내에게 이렇게 거칠게 말한 적은 처음이었다. 다리아의 입술이 분노로 다물렸다.

"그래. 아무것도 묻지 않을게." 다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이것만 대답해 주고 가. 레닌그라드에 가는 건 맞아? 코로빈이 대학교에 갈 수 있게 도와준다며. 만약 가게 된다면 이것저것 준비해야 하니까..."

표도르는 다리아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안 거지?' 머릿속은 아직도 아스타코프와의 대화에 머물러 있었다.

"어제 누가 전화하지 않았어?"

"아 맞아... 아르한겔스크에서 왔다는 항해사가 전화했었어. 당신이랑 아는 사이냐고 물었더니 모르는 사이지만 꼭 만나야 한다던데."

'아내랑 전화했었다는 건 왜 말하지 않은 거지?' 클리모프가 생각했다. "응 그래, 고마워..."

"페덴카. 당신이 대학교에 가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거야. 당신은 똑똑하고 유능하고 헌신적이니까 잘 해내겠지. 졸업하면 제독을 달 수 있을테고. 제독 제복을 입은 모습을 상상해 봐!"

"다리아, 그만해!" 표도르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내가 그런 소리 싫어하는 거 알잖아. 우리 여단에는 나 말고도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후보가 두 명 더 있어."

다리아도 언성을 높이며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뭐가 부족한데? 훈장도 받고 신문에 기사로도 실렸잖아! 우리가 또 얼마나 돌아다녀야 해? 2년, 3년마다 계속 주둔지를 옮기고 주거용 주택도 없는 기지에선 막사에서 지내고! 그래도 우리가 어디 불평한 적 있어?!" 다리아의 목소리가 분노와 울먹거림으로 떨렸다. "이번엔 코로빈이 도와줄 거라고 당신이 말했잖아. 내가 코로빈이랑 한번 만나볼까?"

표도르의 턱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히 그럴 생각하지도 마. 진짜로 화낼 거야."

"당신은 코로빈이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그는 당신 아버지도 알던 사이인데..."

클리모프는 끝까지 듣지 않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동이 트면서 바다를 뒤덮었던 어둠이 저 멀리 물러나고 있었지만 여전히 수면은 어두웠다. 하늘은 폭풍이 몰아치기 전처럼 무겁고 침울했다. 클리모프는 출근하면서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했지만 자꾸만 아스타코프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정말 살아계실까? 지금 어디 계신 거지? 거짓말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이... 비척비척 도착한 사령부 앞엔 레츠키 중령이 무심하게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바실리 이바노비치!" 클리모프가 외쳤다.

"휴일은 어땠나?" 레츠키가 악수를 하며 물었다.

"밤에 넬슨 제독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제가 사관학교에 다닐 때 그에 대한 과학 논문을 썼었다고 말했었나요?"

"그래, 그랬네. 해군 생활엔 수용적이고 유연한 성격이 필요하고 경력 초기에 너무 많은 걸 배우려 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넬슨의 성찰이 마음에 들더군."

"이제 더 많이 배우기 위해 대학교에 가고 싶네요."

레츠키는 클리모프의 말을 듣지 못한 듯이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출항은 못할 거 같네. 30분 전에 폭풍 경보가 있었어. 코로빈은 지금 파일럿들과 통화 중이고."

'취소인가?' 아스타코프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클리모프는 들뜨기 시작했다.

그때 코로빈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손으로 모자를 붙들고 가죽 코트를 바스락거리며 빠르게 걸어왔다.

"아, 도착해 있었나. 아쉽게도 오늘 일정은 취소네. 날씨도 안 좋고 착륙 사고가 있었다는군. 그러니 클리모프 자네는 잠수함으로 돌아가고, 레츠키 자네는 나와 함께 가지. 그래, 클리모프! 오늘 저녁에 포타포프 중령이 순찰에서 복귀하니 같이 만나러 가세. 어뢰 발사에 관한 보고도 들을 예정이니 자네에게 좋을 거야. 다음 주는 자네 어뢰 발사 차례 아닌가."

클리모프는 당황하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동지. 하지만 늦어도 21시에는 가봐야 합니다. 누군가와 약속이 있는데 ...제 아버지를 알고 있다고 합니다."

코로빈은 눈을 껌뻑이며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겨우 답했다.

"좋아, 시간 맞춰 보내주겠네."

잠수함으로 온 클리모프를 부함장 보리소프가 맞이했다. 부함장은 씩씩하게 출항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보고했다.

"오늘 출항은 최소 됐네, 야코프 세르게예비치!"

함장의 신나는 대답에 부함장의 갈색 눈이 밝아졌다.

"그럼 어뢰실에 가봐도 되겠습니까? 어뢰가 어떻게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웃 함선에서 어뢰 두 개를 발사했는데 폭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어뢰도 그럴까 봐 걱정입니다."

"좋아, 가보게. 항해도는 확인했나?"

"조금 틀린 부분을 발견했는데 이제 괜찮습니다." 보리소프가 한동안 망설이다 대답했다. "오늘이 제 아내 라리사 생일이라.. 잠시 나가봐도 괜찮겠습니까?"

"18시 30분까지 복귀한다면 괜찮네. 나도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말이지."

"감사합니다. 제시간에 복귀하겠습니다, 표도르 막시모비치."

일에 몰두하느라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클리모프는 걱정과는 다르게 단 한 번도 아스타코프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여단장과 함께 포타포프를 만나러 가기 전에야 그는 시간을 내 집에 전화를 걸었다.

"나야, 다리아. 별일 없지? 누가 전화 안 했어? 아무도? 그래 알겠어... 오늘은 좀 늦을 거 같아." 너무 무신경하게 말해서 다리아의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클리모프는 재빨리 덧붙였다. "오늘따라 일이 많고 회의도 있어서 그래. 미안해. 일요일에 무르만스크 극장에 같이 갈래? 새 공연이 나왔대. 집에 가는 길에 표를 구할 테니까.. 어때? 좋아? 알겠어." 표도르는 전화를 끊고 서둘러 부두로 향했다.

바다에서 습한 바람이 불어왔다. 클리모프는 어쩐지 불편하고 우울한 기분이 들었고, 아스타코프가 늦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더 침울하게 만들었다. 그때 회색 코트와 검은 모자를 쓴 남자가 표도르에게 다가왔다.

"담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클리모프는 외투 주머니에서 카즈벡 담배 한 갑을 통째로 꺼내 그에게 건넸다.

"가져가세요."

"한 갑 다요?" 남자가 깜짝 놀라 물었다.

"집에 몇 개 있으니 괜찮습니다. 마음껏 피고 건강하시길." 클리모프는 그가 아스타코프인지 순간 기대했지만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짜증이 난 상태였다. '그냥 빨리 가버려...'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웃었다.

"참 마음 넓은 분이시군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드디어 낯선 남자가 길 너머로 사라졌다.

우렁찬 소리와 함께 화물선이 부두에 정박했다.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 사이로 새까만 코트와 모자를 쓴 키 큰 남자가 주위를 둘러보다 클리모프에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혹시 표도르 클리모프 되십니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네. 아스타코프이십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늦어서 미안합니다. 어디.. 저 바위로 가실까요."

아스타코프가 바위에 앉았고 클리모프는 그 옆에 적당히 자리 잡았다.

"아버지에 대해 말해주겠다고 약속하셨죠..."

아스타코프는 부두를 떠나는 배를 바라보며 물었다.

"표도르 막시모비치, 어디서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잠수함 함장으로 복무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많은 성취를 이루어냈군요?" 아스타코프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클리모프는 그제야 아스타코프를 제대로 바라봤다. 그슬린 갈색빛의 피부에 까맣고 푸른 눈은 경계심을 띄고 있었다.

"그쪽도 해군에서 복무하셨나요?" 표도르가 물었다.

아스타코프의 눈이 반짝였다.

"네, 전기 기술자로 복무했고 전역한 뒤에는 아르한겔스크에 있는 이모가 상선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장거리 항해사 훈련을 받고 이제 근무한지 5년째입니다. 제 배는 아르한겔스크에서 수리를 받고 있고 끝나면 다시 바다로 나갈 겁니다." 아스타코프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면서 말했다.

"멀리 나가나요?"

"아직 모릅니다, 쿠바까지 갈지도 모르죠."

"멀군요..."

"저한텐 좋은 일입니다. 오래 항해할수록 임금이 올라가니까요. 진정한 뱃사람은 육지보다 바다가 더 가깝다네! 제 전 상관 코로빈이 그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땐 부함장이었는데, 전역하고 본 적은 없습니다. 그가 지금 어디 있는지 신만이 아시겠죠."

클리모프가 아스타코프를 쳐다봤다. 그가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것이 착각인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코로빈 대령은 현재 제 상관이십니다."

"그래요? 그것 참 놀랍군요!" 아스타코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제 그만 아버지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클리모프가 말했다.

"아버지에 대해 뭘 알고 계십니까?"

"아주 조금요." 클리모프는 침묵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버지는 1939년 11월 핀란드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갑판장이었고, 배를 몰고 제14군 병사들을 무르만스크에서 핀란드가 점령하고 있던 리한마르까지 수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작전에서부터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날이 아버지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북방 함대 본부에서 보낸 아버지의 영웅적인 죽음에 대한 통지서를 받았고 아직도 보관 중이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날 밤은 매우 추웠고 파도가 치솟아 배에서 해안이 보이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전투는 오래가지 않았지만 아버지는 결국 돌아가셨습니다..."

아스타코프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당신 아버지는 그날 밤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천히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가슴에 부상을 입고 포로로 잡혔습니다. 핀란드인들이 그를 치료했고, 3월 나치가 나르비크 항을 점령하고 노르웨이를 점령했을 때 그를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독일에 넘겼습니다."

"그럼 지금 어디 계십니까?"

"저 멀리 노르웨이에. 지금 당신과 얘기하는 거처럼 그와 마주 보며 대화했었습니다."

"이게, 이게 말이 됩니까? 그동안 돌아가신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클리모프가 뜨겁게 숨을 내뱉었다.

아스타코프가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는 지금 트론헤임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배가 식량과 물을 보충하기 위해 항구에 정박했을 때 우연히 만났습니다. 밸브와 호스를 능숙하게 다루더군요.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갑자기 자기도 러시아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세히 말해보라하니 눈시울을 붉히며 자신을 막심 이바노비치 클리모프라고 소개하면서 그날 밤 전투에 대해 얘기해 줬습니다."

"왜 여태 숨어 계신 겁니까?"

"지금까지 뭘 들은 겁니까, 표도르 막시모비치? 그는 리조트로 휴가 간 게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겁니다." 아스타코프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설마 고문도 당하셨습니까?"

"핀란드인들은 아니고, 나치가 심하게 괴롭혔다고 하더군요. 물론 나치는 그에게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 거죠? ...사실 함대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줘서 살아남은 거 아닙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물어보진 않았어요. 아마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는 그럴 인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아니 그 뜻이 아니라... 다른 소련 상선들도 트론헤임에 간 적이 많은데 이제야 아버지가 당신에게 모든 걸 말해줬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클리모프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군요." 아스타코프가 담배를 끄면서 미소를 지었다. "간단합니다. 저와 그는 공통점이 많았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북방함대에 사라토프 출신 동포가 한 명 있다고 말했습니다. 누구냐고 물어보니 '제냐 코로빈'이라고 하더군요. 한때 제 상관이자 지금은 당신 상관인 그 코로빈이요!"

클리모프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버지가 기뻐하셨겠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기뻐하지 않더군요."

"왤까요? 아, 그리고 제가 북방함대에서 복무하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대화를 한 다음날 그가 제게 찾아와서 아들 좀 찾아달라 부탁했습니다. 우리는 금방 신문에서 당신과 관련된 기사를 찾고 보여줬습니다. 어뢰에 대한 거였죠 아마? 영웅의 아들인 표도르 막시모비치 클리모프 소령이 잠수함을 지휘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기사를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아들! 내 작은 아들이 이제 잠수함 함장이야!'

긴 침묵이 이어졌다. 표도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아스타코프가 운을 뗐다.

"그가 저를 집에 초대했지만 우리는 트론헤임에 3일 동안만 머무는 거라 더 시간을 낼 수 없었습니다. 곧 다시 그곳에 갈 테니 편지를 써주면 꼭 그에게 전해주겠습니다. 주변에 알리진 마세요. 당신이나 나나 알려져서 득 될 게 없고 일이 더 커지는 걸 원치 않습니다. 아, 깜빡 잊을 뻔했네요." 아스타코프가 주머니에서 사진 하나를 꺼냈다. "자, 보세요."

클리모프의 가슴이 아렸다.

"아버지..."

사진을 받아든 표도르의 손이 덜덜 떨렸다. 아버지 막심 클리모프가 배 갑판에 서서 미소 짓고 있는 사진이었다.

"뒷면에도 쓰여있습니다."

표도르가 사진을 뒤집어 쓰여있는 글씨를 읽었다. [막심 클리모프, 1939년 7월.]

아스타코프가 시계를 들여다봤다.

"실례합니다. 이만 가봐야겠군요.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편지 잊지 마세요. 아버지가 많이 그리워하십니다." 그가 표도르에게 손을 내밀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표도르... 표도르 세르게예비치.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아스타코프는 별거 아닌 듯이 말했다.

"뭘요. 전직 해군이자 항해사로서 당신을 도울 수 있어 기쁩니다."

그들은 마치 오랜 친구인 거처럼 따뜻하게 헤어졌다.

클리모프는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다리아는 이미 잠들어 있었고 달이 창문을 통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다리아의 얼굴이 추워 보여 이불을 덮어주고 표도르는 아이 방으로 향했다. 아들 표트르도 잠들어있었고 침대 옆 탁자엔 학교 수학 책이 놓여있었다. '차 한 잔 마시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써야지. 내일 일하면서 쓸 시간은 없을 거야.' 그는 서랍에 아버지의 사진을 넣고 부엌으로 향했다. 우유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체리 잼을 곁들인 팬케이크가 식탁 위에 놓여 있었다. 위에는 [페댜, 나 늦게 자는 거니까 깨우지 마.]라는 메모도 붙어 있었다.

표도르는 서둘러 저녁을 먹고 책상에 앉았다. [안녕하세요, 사랑하는 아버지.] 그는 첫 줄을 쓰고 고민하다 종이를 구기고 새 종이를 꺼내왔다. [안녕하세요, 아버지.]

마음이 아파왔다.

 

 


 

해당 편에 나온 등장인물들은 모두 작가의 오리지널 캐릭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