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회고록]6 [번역/회고록] 쿠즈네초프 제독의 전후 회고록 (일부) 이 글은 쿠즈네초프의 전후 회고록 Крутые повороты 중 맨 끝부분의 일부만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글의 끝이 회고록의 끝입니다.) 오역,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사전에 알아두면 좋은 역사적 사실들을 알려드립니다. ─ 첫 번째 불명예 스탈린과 꾸준히 언쟁을 벌여오던 쿠즈네초프는 1947년 1월 해군 총사련관직에서 해임당하고 2월에 해군 훈련 시설 국장으로 임명됩니다. 1948년 1월 12일, 쿠즈네초프는 다른 제독들(L.M. 갈레르, V.A. 알라푸조프, G.A. 스테파노프)과 함께 고보로프 원수 의장 아래 명예법원에 회부되었습니다. 42년~44년에 소련 정부의 허가 없이 낙하산 어뢰, 원격 수류탄, 여러 함포 시스템, 사격 통제 계획 등 다수의 도면과 기밀.. 2023. 12. 12. [번역/회고록] 해군에서의 체포 — 쿠즈네초프 제독 해군에서의 체포 1937년 11월, 태평양함대 사령관 G.P. 키레예프는 모스크바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기차역에서 그를 직접 배웅했는데 내게 지시를 내리던 그는 어딘가 다소 산만하고 불안해 보였다. 기차 안 좌석에 앉은 그는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평소같이 모스크바로 출장 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키레예프 이전에 M.V. 빅토로프와 G.S. 오쿠네프가 비슷한 방식으로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키레예프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곧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내게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함대 사령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12월 말에 내가 새로운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전보를 받았고,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지만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젊음의 패기와.. 2023. 12. 12. [번역/회고록] 쿠즈네초프 제독 일화 이것저것 [번역/회고록] 대숙청에서 학교 동기를 구해준 쿠즈네초프 제독 글쓴이: 옐리세이 안드레예비치 체르노쇼크 ㅡ 대령, 해군 과학 박사 저는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쿠즈네초프와 친밀했으며 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23-1926년 동안 그와 함께 해군학교에서 kuzne.tistory.com 쿠즈네초프의 학교 동기 옐리세이 안드레예비치 체르노쇼크가 쓴 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1942년 5월 초 쿠즈네초프와 저는 케르치 방향으로 진군하는 파시스트 군대에 의해 위험한 상황에 처한 흑해함대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위해 흑해로 떠났습니다. 우리는 파시스트 폭격기에 의해 무자비하게 폭격을 당한 노보로시스크에 도착했고 노보로시스크 해군 기지 사령관인 홀로스티야코프 대령의 보고를 들은 쿠즈네초프는 즉시 방공 지휘소로.. 2023. 12. 12. [번역/회고록] 대숙청에서 학교 동기를 구해준 쿠즈네초프 제독 글쓴이: 옐리세이 안드레예비치 체르노쇼크 ㅡ 대령, 해군 과학 박사 저는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쿠즈네초프와 친밀했으며 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23-1926년 동안 그와 함께 해군학교에서 공부했고, 1938년 5월까지 태평양함대에서 함께 복무했습니다. 저는 태평양함대 전투훈련부 참모장으로서 함대의 전투 훈련을 계획하고 감독할 때 그의 지시와 조언을 따랐으며, 1941~1942년과 1946~1947년에 해군 인민위원의 직속 정무부서 책임자로서 그의 지시와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저는 직무상 함대 내외에서 그와 동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쿠즈네초프는 해군학교 시절 규율을 잘 지키고 근면하며, 외향적이고 사무적인 체계성과 문화 교양을 갖춘 모범적인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순박하며 친절하고 .. 2023. 12. 11. [번역/회고록] 판텔레예프 제독이 기억하는 쿠즈네초프 제독 삶의 풍파에 어릴 때 만난 인연이 멀어지기도 하고 인생의 방향이 우리를 떨어트려 놓을 때도 있지만 계속 연락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잘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저와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쿠즈네초프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926년 니콜라예프시의 우울하고 쌀쌀한 가을 날이었습니다. 천장이 높은 크고 오래된 붉은 벽돌로 지어진 막사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집이나 숲으로 둘러쌓여 있지도 않았습니다. 막사에는 부크강의 니콜라예프 조선소에서 건조 중이던 순양함 "체르보나 우크라이나"의 승무원들이 거주했습니다. 이 배는 가까운 장래에 흑해 함대에 합류할 예정이었습니다. 순양함의 승무원을 배치하기 위해 매일 다양한 전문 분야의 수병들과 해군학교를 졸업한 지휘관들이 막사에 도착했습니다. 축축하고 쌀쌀한 .. 2023. 12. 11. [번역/회고록] 쿠즈네초프 제독이 회상하는 4명의 제독 재판 사건 "우여곡절"의 경우, 첫 번째 사건(재판에 회부됨)과 두 번째 사건(해임) 모두에서 저의 사악한 적은 N.A. 불가닌이었습니다. 왜? 그가 스탈린 치하에서 인민 국방부 부위원장이었을 때 나는 해군 인민위원회 부지에 대해 그와 다소 불쾌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함대의 여러 부서를 퇴거 시키라고 무례하게 명령했습니다. 대안을 요청했지만 그는 거절했고 저는 그에게 동의할 수 없어 스탈린에게 보고했습니다. 스탈린은 제 편을 들어 불가닌을 꾸짖었습니다. 어떻게 아무런 대가도 없이 퇴거시킬 수 있겠습니까? 불가닌은 분노했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주방에서 어떻게 요리가 되는지 알고있다" 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기억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ㅡ 레닌그라드에서 L.M. 갈레르와 .. 2023. 12.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