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불길이 전선을 집어삼키고 독일군이 소련 땅으로 진격하여 모든 생명체를 파괴하고 있는 상황은 쿠즈네초프를 매일 괴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발트해 해군 기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함대가 또 어떤 충격을 받을지 아직 알 길이 없었지만 나쁜 일이 생길 것만 같은 직감들이 쿠즈네초프를 감쌌다. 따라서 쿠즈네초프는 해군 인민위원으로서 최대한 많은 함선들을 지키기 위해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바쁜 발걸음은 이내 레닌그라드에 있는 트리부츠 제독의 전화에 멈춰 서버렸다. 독일군이 리예파야에 근접했고 외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즈네초프가 수화기에 귀를 바짝 대고 불안해하는 트리부츠를 최대한 진정시켰다.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나도 자네의 걱정을 이해하네... 그래, 힘들겠지, 누가 안 그렇겠나? 인민위원인 나는 어떨 거 같나?... 그래, 음향기뢰와 자성 기뢰에 대해선 나도 알고 있네. 대처법을 찾고 있으니 그동안은 함선의 자성들을 제거해야.. 아니. 지금은 자네에게 갈 수 없어. 대신 이사코프 제독이 갈 테니 그와 함께 의논하게."
'역시 기뢰가 제일 문제 군...'
쿠즈네초프가 무겁게 전화기를 내려놓자 갈레르 제독이 그에게 다가왔다.
"다 작성했습니까, 레프 미하일로비치?"
"예, 조선산업 인민위원회에 보내는 요청서입니다. 살펴보고 이상 없다면 서명해 주시길 바랍니다."
갈레르가 서류를 쿠즈네초프에게 건네고 옆에 붙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수리 중인 함선들을 가능한 한 빨리 복귀시키고 구축함 '그로즈니'와 '스타트니' 시운전을 빠르게 완료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잠수함에 대해서는 조선산업위원과 직접 얘기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작년에 북방 함대에 배속시킨 순양 잠수함 K-1과 K-2에 대한 작업이 아직 끝나지 않아 전투를 치르기엔 무리입니다. 또한 8척의 함선이 점검 중인데 그중 4척이 파이크급 잠수함입니다."
"그럼 언제쯤 운용 가능한 겁니까?"
"빨라야 7월입니다."
쿠즈네초프는 서류에 서명하고 오늘 바로 조선산업 인민위원회에 전하라고 지시했다.
"제가 이반 이시도로비치 노센코와 한번 얘기해 보겠습니다. 아, 그리고 트리부츠와 통화했는데 음향기뢰와 자성 기뢰를 극도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독일군이 크론슈타트와 탈린뿐만 아니라 세바스토폴, 노보로시스크, 오데사, 오차코프에도 뿌려댔다고 들었는데 예상한 사항이지만 아직 이 기뢰들에 대항할 적절한 대처법이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전함 '마라'가 자성 제거 장치를 탑재하고 있습니다."
쿠즈네초프가 몸을 가만두지 못하고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방함대와 흑해함대엔 없는데 그게 무슨 소용입니까? 자성은 그렇다 쳐도 아직 음향기뢰를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단은 모든 함선들이 자기 처리를 하지 않으면 출항하지 못하게 지시하세요. 권고가 아니라 명령입니다. 그리고 북방함대는 겨우 잠수함이 15척밖에 없습니다. 새 어뢰정 'SM-3'의 테스트는 끝났습니까? 니키틴 중령이 담당이었죠?"
"예, 전에 니키틴과 얘기했었습니다." 갈레르는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침착하게 말했다.
"새 어뢰정은 생산에 들어갔으며 테스트는 성공적이었고 니키틴도 만족했습니다. 그러나 골로프코가 당장 아무 함선이라도 달라고 재촉해서 북방함대에 보낼 D-3 어뢰정을 준비하라고 지시해뒀습니다. 밤낮으로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렌츠해에서 활용하기 좋은 함종입니다. 7월 말이나 그 이후에 철도를 통해 보낼 예정입니다."
"아뇨, 너무 늦습니다." 쿠즈네초프가 끼어들었다.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닙니다. 발트해에서 북방으로 잠수함 8~10척을 옮기는 건 어떨까요? 백해-발트해 운하를 건너면 빠를 것입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당신이라면 할 수 있겠죠, 레프 미하일로비치?"
쿠즈네초프의 눈빛에서 간절함을 읽은 갈레르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당국이 승인하는 즉시 해결해 보겠습니다."
맡은 임무에 항상 최선을 다하는 갈레르 제독은 해군을 위해 살아온 사람 중 하나였다. 그와 쿠즈네초프는 쿠즈네초프가 해군사관학교 시절 발트함대 본부에서 실습을 할 때 처음 만났었다. 당시 기함의 함장을 맡고 있던 갈레르는 쿠즈네초프를 눈여겨보고 분석 능력이 뛰어나니 본부에 오면 좋겠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었다.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해 복무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쿠즈네초프는 참모직으로 오라는 갈레르의 제안을 거절하고 흑해로 향했다. '바다에서 항해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라는 게 이유였다.
"국방위원회에 관련 법령이 있을 겁니다." 내내 날이 서 있던 쿠즈네초프의 표정이 마침내 부드러워졌다. 그때 이사코프 제독이 입구에 서서 문을 두들겼다.
"불렀습니까,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쿠즈네초프는 이사코프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들고 진지하게 말했다.
"이반 스테파노비치, 당신은 해군 인민위원회를 대표해 레닌그라드의 발트함대에 가게 될 것입니다. 한시가 바쁘니 자세한 건 가서 트리부츠 제독에게 들으면 됩니다."
이사코프는 퍽 당황스러워 보였다.
"얼마나요?"
"모르겠습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누가 상황이 이 정도로 흘러갈 거라고 예측이나 했겠습니까? 가시면 제 지시 없이 제독 스스로가 모든 걸 결정해야 합니다."
쿠즈네초프가 슬픈 톤으로 덧붙였다.
"총검을 들고 돌격하라는 게 아닙니다, 스테파니치. 당신 역할은 전선에서 싸우는 게 아니니까요. 몸조심하길 바랍니다."
쿠즈네초프가 작별의 의미로 안아주자 이사코프가 울먹이며 말했다.
"가-감사합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발트함대에 대한 걱정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에 독일군이 리예파야를 점령했다는 트리부츠의 보고를 받고 나서는 더욱 그랬다. 해군 군사 위원회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침울하고 우울한 분위기였다.
"동지들," 쿠즈네초프가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보시다시피 전쟁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어 우리 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습니다. 이제 저희 해군은 육군과 협력해 적의 상륙으로부터 우리 기지를 방어하고 독일군의 해군 통신을 끊어야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첫 전투에서 이미 우리의 약점이 드러났습니다. 바다로부터의 상륙을 막아도, 육지로 밀고 들어오는 적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리예파야가 나치의 손에 떨어졌습니다... 이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레프 미하일로비치."
갈레르가 자리에 일어나 번뜩이는 눈으로 말했다.
"저는 니콜라예프 조선소가 제일 걱정입니다. 아직 건조 중인 잠수함만 34척인데 독일군이 이리로 맹렬히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최대한 빨리 건조 속도를 높여야 합니다."
해군 보급 책임자인 보로브예프 장군은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며 전쟁 전 훈련으로 기름을 많이 소모한 함대에 더 많은 연료를 보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름을 확보하려면 위원 동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무슨 도움이요? 세르게이 일리치, 당신은 미코얀 동지께 얘기할 권한이 있으니 그에게 직접 말해보시길 바랍니다."
쿠즈네초프는 딱 잘라 말하고 이어 말했다.
"어제 골로프코가 적어도 만 자루 이상의 소총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몰로토프께 이 얘길 전하자 그는 총과 수류탄을 북방함대에 수송해 주겠다고 약조해 줬습니다. 유명한 여성 파일럿 발렌티나 그리조두보바가 수송기를 이끌 겁니다. 그리고 이제 트리부츠 제독도 소총이 절실합니다."
그리고 그때 전화가 울렸다. 스탈린의 부관인 포스크레비셰프의 목소리였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12시 0분까지 스탈린 동지께 오십시오."
쿠즈네초프는 시계를 보고 한 시간 반 정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한 뒤 알라푸조프를 바라보았다.
"블라디미르 안토노비치, 해군 참모부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간략하고 구체적으로 정리해 주게. 또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들에 대해 자네의 의견도 알려줬으면 하네."
쿠즈네초프가 스탈린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바투틴 중장도 그곳에 있었다. 바투틴은 파일을 들고 서있었고 분위기가 심각해 보여 긴장한 쿠즈네초프에게 스탈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발트해의 상황은 어떤가? 나치가 리예파야에 입성했다는 보고를 들었네. 그곳의 지휘관은 누구길래 기지와 병사들을 버리고 도망간 거지?"
울컥한 쿠즈네초프의 얼굴에 피가 몰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곳의 사령관이었던 클레벤스키 대령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독일의 점령을 막기 위해 용맹하게 싸웠지만 전력이 부족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소련군이 속절없이 밀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들로부터 큰 비난은 없었지만 스탈린의 눈은 그의 기분이 불쾌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적의 공격에 후퇴하는 게 용맹한 일인가? 도시를 차례로 잃고 있는데 잘못한 사람 하나 없다는 게 참 신기하군. 아무튼 제일 중요한 건 레닌그라드이니..."
스탈린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들기다가 바투틴을 쳐다보며 말했다.
"주코프를 키예프로 보냈으니 지금쯤 남서부 전선 사령관 키르포노스 장군의 지휘소에 있을 테지. 연락은 해봤나?"
"안타깝게도 주코프는 현재 지휘소가 아니라 전선 어딘가에 나가있다고 합니다. 발견하는 즉시 연락하라고 말 해놨습니다."
"연락이 오면 다시 오게."
바투틴을 내보낸 스탈린의 시선이 다시 쿠즈네초프에게 향했다.
"그래서, 독일군이 발트해에 상륙할 거 같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함대 사령관들에게 상륙에 대비하라고 지시해놨습니다. 발트해의 트리부츠 제독의 말에 의하면 정보국은 아직 독일군이 상륙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골로프코 사령관도 비슷한 말을 했으니 독일군은 상륙이 아닌 육지를 통해 탈린을 점령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순양함 '막심 고르키'는?"
이 질문에서 쿠즈네초프는 스탈린이 그저 질책을 원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전쟁 둘째 날 적의 기뢰 폭발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었고 구축함 '그녜브니'가 침몰했습니다. 즈다노프 동지에게 말씀드렸기 때문에 이미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스탈린은 침묵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테이블을 따라 걸었다.
"이제 발트함대 본부는 어떻게 될 거 같나? 리예파야는 빠른 속도로 무너져내렸지. 만약 그곳에 순양함을 보냈다면 어땠을 거 같나?"
스탈린이 쿠즈네초프를 날카롭게 쏘아보았고 쿠즈네초프는 단호하게 항변했다.
"그다지 도움 되지 않았을 겁니다. 독일군은 지상과 제공권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습니다. 공중 공격으로부터 순양함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스탈린은 큰 지도 앞에 멈춰 서서 지도를 바라보고 무언가 생각하다 말했다.
"탈린은 리예파야보다 더 오래 버텨야 할 것이라고 트리부츠 동지에게 전하게."
쿠즈네초프는 스탈린과의 대화 후 답답한 마음만 들었다. 전쟁 전에는 리예파야 방어에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1940년에 트리부츠와 함께 발트해 군사지구 사령관과 리예파야에 대해 논의했을 때 그는 분명 웃으면서 말했었다. '우리가 국경에서 그렇게 멀리 밀려날 리 있겠습니까?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하하하…'
쿠즈네초프는 담배를 피우러 마당에 나갔다. 답답한 사령부 건물을 벗어나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니 좀 살 거 같았다. 짙은 밤하늘에서 별들이 반짝이고 달빛이 포탄으로 상처 입은 대지를 비추고 있었다. 농사를 짓고 인민들을 먹여 살려야 하지만 이제 그 땅들은 독일군의 군화에 짓밟히고 있었다. 이것보다 더 최악이 있을까. 어째서 독일에 이렇게 밀리는 걸까. 총만으로는 부족했다. 소련은 그들보다 탱크도 비행기도 배도 적었다. 이것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고 누가 인민들에게 답해야 하는가? 정직하게 의무를 다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자신의 잘못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쿠즈네초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밝아온 아침에도 불행은 끝없이 찾아왔다. 소련 정보국에서 보내온 보고에 쿠즈네초프는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빈니차에서 후퇴하는 중.] 후퇴, 후퇴, 패배. 쿠즈네초프의 가슴이 고통으로 차올랐다. 제발 누군가가 잠시만이라도 저놈의 나치를 붙들어 숨 쉴 틈을 줬으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았다.
쿠즈네초프는 지도를 보면서 찬물을 들이켜고 끓어오르는 속을 달랬다. 그의 시선이 탈린에 꽂혔다. 트리부츠 제독이 보고한 대로 독일군은 함대 본부를 향해 개떼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인명 손실이 났음에도 그들은 멈출 줄 모르는 듯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에 따라 발트함대도 최선을 다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순양함 '키로프', 선도구축함 '민스크'와 '레닌그라드' 외 구축함 10척, 해안포 8개, 열차포 1개, 장갑열차 2개가 탈린을 방어하는 8군을 지원하기 위해 배치되었고 바다는 기뢰와 폭탄으로 깔려있었다.
"탈린은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트리부츠가 확신했다.
쿠즈네초프는 바렌츠해로 시선을 돌렸다. 북방 함대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독일군이 무르만스크에 두 번째 공습을 시작했고 상황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었지만 골로프코 제독은 나치를 격퇴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공격 부대가 즉시 자파드나야 리차 지역에 상륙했고 스톨보프 상위가 이끄는 잠수함이 호닝스버그 항구에서 독일 수송선을 침몰시키면서 북해 해전의 화려한 막을 올렸다. 이 소식을 들은 쿠즈네초프는 기뻐하면서 골로프코 제독에게 전화를 걸어 스톨보프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감사를 전할 것을 요청했다.
"이제 독일군은 펫사모에서 니켈을 수급하려고 하겠지. 항구를 봉쇄하고 지금처럼 잠수함으로 수송선들이 보이는 족족 침몰시키게. 알겠나?"
쿠즈네초프가 말을 마치고 수화기를 내려놓자 알라푸조프 제독이 다가왔다. 그는 옥챠브리스키 제독과 나눈 얘기를 토대로 흑해 함대가 세바스토폴, 오데사, 케르치 해협, 노보로시스크, 투압세, 바투미 등 한 달 안에 최대 8천 개의 기뢰를 설치해야 한다고 보고했다.
"다뉴브 소함대 사령관 아브라모프 후방제독에 따르면 다뉴브의 함선들은 오늘 중으로 오데사에 도착할 것이라고 합니다." 알라푸조프가 보고를 마쳤다.
"다뉴브 소함대와 아브라모프는 믿을만하지." 쿠즈네초프가 끄덕이며 대답했다.
전쟁 초부터 다뉴브 소함대는 곤혹을 치렀다. 독일군은 소련의 함선들을 파괴하기 위해 다뉴브강과 프루트 강을 끝없이 공격했고 이즈마일 소함대의 주요 기지를 포격했다. 그러나 다뉴브 함대는 제14소총병군단 병사들과 함께 적의 공격을 격퇴했을 뿐만 아니라 키리야에 상륙하여 70km에 달하는 다뉴브강 루마니아 해안을 점령했다. 이것은 대조국전쟁에서 일어난 첫 번째 상륙작전이었다. 군의 철수로 함대가 오데사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구축함 '하르코프'와 '보드리'가 대기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사흘 후 남서쪽 전선의 상황이 급격히 복잡해지면서 쿠즈네초프는 다뉴브 소함대를 헤르손과 니콜라예프 지역으로 재배치 시키지만 이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선도구축함 '모스크바'의 침몰은 아직도 안타까워." 쿠즈네초프가 알라푸조프를 바라보며 갑자기 말했다.
"옥챠브리스키에게 조언 좀 잘 해주게. 선도구축함을 보내다니... 순양함이었으면 기뢰 밭 밖에서 포격할 수 있었을 것을."
알라푸조프는 불쾌한 기색으로 쿠즈네초프에게 반박했다.
"어디로 어떤 함선을 보낼지 결정하는 것이 함대 사령관이 할 일입니다, 인민위원 동지. 그리고 전에 그에게 작전에 대해 조언한 건 당신 아닙니까."
쿠즈네초프의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다른 이었다면 무례하다고 화를 냈겠지만 쿠즈네초프는 알라푸조프가 얼마나 해군에 헌신적이고 정직한 인물인지 알았기에 참고 넘어갔다.
"블라디미르 안토노비치... 알려줘서 고맙군."
흑해에서 일어난 일은 전적으로 옥챠브리스키의 잘못이었다. 6월 23일 밤, 소련 해군 항공기는 루마니아 해군의 주요 기지인 콘스탄타의 군사 시설을 공습했다. 콘스탄타와 술리나를 향한 공습은 여섯 차례나 더 이루어졌고 쿠즈네초프는 석유가 많이 생산되는 플로이에슈티를 공격하는 것이 좋다며 플로이에슈티 폭격 작전을 승인했다. 루마니아 석유는 독일군에게 쓰였기에 스탈린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원이었다. 쿠즈네초프가 콘스탄타 포격에 구축함을 포함시키는 게 적절한 것이냐고 물었을 때 옥챠브리스키 제독은 생각해 보겠다고 대답하고 가서는 '하르코프'와 '모스크바'의 지휘관들에게 콘스탄타로 가서 함포로 마을과 항구를 폭격하라고 명령했다. 새벽의 콘스탄타 해안은 불길로 뒤덮였다. 순양함 '보로실로프'와 구축함 두척의 엄호를 받으면서 300발이 넘는 포탄을 퍼부은 두 함선은 빠르게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하필이면 기뢰 밭에서 기뢰 방어기를 잃어버렸고 함장들의 세심한 지휘에도 불구하고 '모스크바'는 기뢰 폭발로 두 동강이 나면서 침몰했다. '하르코프'가 재빨리 '모스크바'의 승조원들을 구조했지만 모두를 구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트리부츠가 또 다른 손실을 입었습니다. 독일 기뢰에 함선이 침몰했다고 합니다." 알라푸조프가 침통하게 말했다.
쿠즈네초프도 다양한 작용을 하는 독일의 새로운 기뢰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해체할 수 있을까? 못한다면 계속해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쿠즈네초프는 기뢰와 어뢰를 담당하는 시바예프 제독을 불러냈다.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과학자들 중에 알렉산드로프와 쿠르차토프라는 인물들이 있는데 이들이라면 해군과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쿠즈네초프는 제안을 승인했다.
"내가 알렉산드로프와 얘기해 볼 테니 자네는 세바스토폴로 가서 해군과 얘기하게. 소해함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물리학자들과 협업하여 많은 진척을 이루어 냈습니다."
"최대한 서둘러주게. 그 어느 때보다 소해함이 절실해."
떠나기 전 알렉산드로프가 쿠즈네초프에게 부탁했다.
"해군 측에서 직접 기뢰를 해체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작동 방식을 알아야 대응법도 만드니까요. 부디 자원자들이 많았으면 좋겠군요."
"걱정 마세요, 아나톨리 페트로비치. 옥챠브리스키 함대엔 지원할 열의 있는 장병들이 충분히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침 과학자 무리가 흑해 함대에 도착한 날 밤 노보로시스크가 폭격당했다. 아침에 독일군이 투하한 공중기뢰 2개가 항구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발견되었고 함대는 이 기뢰들을 해체하자고 결정했다. 기뢰 전문 대원 보가첵 상위가 해군기지 사령관 홀로스티야코프 대령에게 기뢰 해체 준비 작업이 끝났다고 보고했다.
"대원들은 신중하게 골랐겠지?" 홀로스티야코프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용감하고 필요한 대원들로 골랐습니다." 보가첵이 확신하며 말했다.
"좋아."
조심스럽게 모래 해변에 놓여있는 기뢰를 보고 홀로스티야코프가 말했다.
"함대 본부에 연락할 때까지 아직은 이 예민한 미녀를 건들지 말게. 그쪽에서도 사람이 올 거야."
그 후 세바스토폴에서 흑해 함대 기뢰 책임자 말로프 대위와 전기 기술자 리슈네프스키가 도착했다.
"이게 누구야, 게오르기 니키티치. 기뢰 해체의 영광을 누릴 준비는 되었나?"
홀로스티야코프의 인사에 말로프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당연하죠. 만약 제가 죽는다면 기뢰 때문에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수 없는 소리 말게!" 홀로스티야코프가 화를 내며 웃었다.
"아직 갈 길이 머네, 건투를 빌지 제군들." 그는 리슈네프스키와 보가첵과 악수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불필요한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 알겠나? 기뢰에서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나거든 당장 피하게. 전화로 보고하면서 진행하고 기뢰에 대한 모든 걸 기록하는 것도 잊지 말고."
기뢰 해체가 진행되는 해변은 긴장된 침묵으로 휩싸였다. 바다도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고 시간은 어느덧 3시간이 넘게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 첫 번째 해체작업은 성공적이었다. 홀로스티야코프도 기뻐하며 그들을 축하했다.
그러나 두 번째 기뢰. 이 기뢰엔 누군가가 기뢰를 열려고 할 경우를 대비한 함정이 있었다. 보가첵과 리슈네프스키가(말로프는 조금 떨어진 참호에서 전화로 통신하며 진행했다.) 너트를 풀고 덮개를 열자 갑자기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홀로스티야코프의 말대로 그 자리에서 바로 벗어나려고 했지만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놀란 홀로스티야코프가 서둘러 뛰어왔을 땐 이미 보가첵과 리슈네프스키는 죽어있었고 말로프는 심하게 다쳐있었다. 기뢰가 있던 곳엔 검고 큰 구덩이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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