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번역/소설]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3장 (1)

by 쿠악이 2023. 12. 12.

그림작가: 이고르 라진스키

 

3장

 

쿠즈네초프는 지도를 열심히 쳐다보았다. 잠깐 그의 머릿속에 대담한 계획이 떠올랐지만, 이른 아침 바다 위로 자욱한 물안개처럼 희미했다.

전쟁은 육군이든 해군이든 누구에게나 가혹한 시험이다. 그리고 특히 군 지휘관에게는 더욱 중요했다. 자고로 지휘관이란 확고한 성격, 용기,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올바른 명령을 적시에 내려 부하들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어야 했다. 이것들은 재능의 범주인가? 재능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임과 동시에 노력과 자신감 없이는 그들을 결코 실현시킬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해군 인민위원 쿠즈네초프의 업적에서 두드러졌다. 쿠즈네초프의 직무 범위는 광범위했고 그의 활동은 그의 업무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업무 밖에서도 성공을 가져다줄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고 가끔은 운 좋게 발견하기까지 했다. 이사코프 제독이 표현한 대로 쿠즈네초프는 여러 번 '기적'을 찾아냈고 그 결과는 한때 쿠즈네초프를 이상주의자라고 폄하하던 스탈린이 인정할 정도로 효과적이고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 '기적'이란 무엇인가? 모든 것의 시작으로 가보자. 매일 아침, 해군 참모차장 알라푸조프 제독은 군인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선을 표시한 지도를 들고 다녔다. 그리고 쿠즈네초프의 시선은 베를린을 표시한 검은 십자가에 꽂혀 떨어지지 않았다.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쿠즈네초프가 지도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나치의 둥지는 그리 멀지않아...' 그러다 아주 놀라운 생각이 떠올랐고 쿠즈네초프는 이 아이디어를 놓칠 수 없었다. 그와 동시에 스탈린이 이 생각을 이해 하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스탈린이 거부한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위험을 감수해야지.' 쿠즈네초프가 결심하고 결연하게 '크렘린'에 전화를 걸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쿠즈네초프 제독입니다, 스탈린 동지."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독일군이 모스크바를 폭격하고 있는데 어째서 저희는 베를린을 폭격하지 않습니까? 위험하긴 하지만 시도해 볼 만합니다. 또한 저는 성공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해군 참모부에서 수립한 계획을 보고드리겠습니다."

스탈린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한동안 수화기엔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스탈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쿠즈네초프 동지, 그대, 지독한 이상주의자로군! 우리 군대는 적의 진격을 막지 못하고 있고 이제 자네는 베를린 폭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먼. 그런 종류의 아이디어엔 질렸네. 우린 지금 실제 실행할 수 있는 작전이 필요하네!"

쿠즈네초프는 스탈린의 질책을 예상했기 때문에 당황스럽지 않았지만 내면에서 답답함과 분노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쿠즈네초프는 다듬지 않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스탈린 동지, 스타브카의 일원이자 국가 국방위원회 위원으로서 저를 믿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해군 인민위원이며 제가 보고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중대한 일입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마 스탈린은 이렇게나 완고한 쿠즈네초프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운 거 같았다. 마침내 들려온 것은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래, 기다리고 있겠네."

"예!"

쿠즈네초프는 안심하고 숨을 내쉴 수 있었다.

해군 참모부에서 베를린 폭격에 대한 아이디어가 바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당시 독일 함선들은 필라우(現 칼리닌그라드의 발티스크)에 주둔하고 있었고 쿠즈네초프는 트리부츠에게 항구를 폭격하여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다 지도를 보는 쿠즈네초프의 시선이 필라우 항구에서 자연스럽게 베를린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제국의 수도는 필라우와 가까운 것처럼 보였고 쿠즈네초프는 폭격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베를린 폭격?" 알라푸조프도 지도 속 베를린을 바라보았다.

"위험을 감수하겠나?"

"당연하죠! 상부에서도 찬성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들은 지도를 펼치고 거리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계산 결과, 레닌그라드에서 출발한다면 리예파야보다 조금 더 멀리까지 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에젤 섬에서 이륙한다면 베를린까지 충분히 가능한 거리였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 신중히 준비해야 해, 블라디미르 안토노비치. 이건 해군 인민위원인 내 권한을 넘어설 정도의 중대한 계획이야."

쿠즈네초프가 알라푸조프를 바라보고 말했다.

"자보론코프{세묜 표도로비치 자보론코프(1899-1967): 1939-1945년 해군 항공대 사령관} 장군이 자리에 있나?"

"어제 레닌그라드에서 막 돌아왔다고 합니다."

"당장 데려와!"

해군 항공대 사령관 자보론코프 장군은 쿠즈네초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계획에 대해 들을수록 그의 광대뼈가 드러난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회색 눈동자에 환한 빛이 돌기 시작했다.

"유혹적인 아이디어군요... 그러나 애프터버너를 사용하더라도 DB-3 폭격기가 그렇게 먼 거리를 왕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에젤 섬에서 출발한다면..." 그는 몇 초 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네, 거기서 이륙하죠. 그곳에 막 활주로 건설을 마친 카훌 비행장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숙련된 파일럿들과 얘기해 보겠습니다."

"좋아, 세묜 표도로비치, 당장 발트해로 가보게. 항공 연대 사령관 프레오브라젠스키와 정확히 의논해 보고. 이틀이면 충분하겠지?"

"늦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자보론코프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바라보았다. "한 시간 후에 출발하겠습니다. 트리부츠 함대사령관에게 따로 전할 말은 없으십니까?"

"섬으로 휘발유와 폭탄을 배달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 우리 계획에 대해선 간략하게만 말하게. 그 외엔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고. 잘 알겠지? 안전한 비행 되길 바라네."

하지만 장군은 떠나지 않고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쿠즈네초프를 응시했다.

"또 뭐가 남았나?"

"...여태 이런 계획을 생각하지 못한 게 후회됩니다. 어떻게 생각해 내신 겁니까?" 자보론코프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지만 굳어지는 표정을 막을 수 없었다.

"자네한테 가고 있던 아이디어를 내가 가로챈 거네, 세묜 표도로비치." 쿠즈네초프가 농담을 하며 웃었다. "무얼 걱정하나, 동지. 적을 타격할 방법을 찾는 것은 우리의 공통된 대의 아닌가!..."

"누가 카이사르가 되고 싶지 않겠습니까?" 자보론코프가 웃었다.

"카이사르가 되고 싶다면 카이사르의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해! 로맹 롤랑이 그리 말했지. 맞는 말이야. 대업을 위해 이만 가보게!"

무더운 여름밤 새벽에 쿠즈네초프는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에 얇은 초승달이 떠 있었다. 창밖의 고요함은 무겁고 끈적했는데, 폭풍전야 때가 딱 그러했다. 함대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엄습하는 걱정과 불안감을 떨치려 쿠즈네초프는 최근 골로프코와 나눈 대화를 곱씹었다. 경비함 '브릴리안트'가 스뱌토이 노스 곶에서 독일 잠수함을 대담하게 공격했다는 내용이었다. 수심 깊이 폭탄을 투하하자 기름물결이 일어나면서 잠수함이 가라앉았다고 했다.

"결론은 '브릴리안트'의 함장이 계산적이고 용맹하게 행동했다 거 군? 성이 어떻게 발음되는 거지? 코스메츠크?"

"예, 인민위원 동지." 수화기 너머에서 골로프코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저도 현장에 있었고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코스메츠크에게 훈장을 수여하지 않겠습니까?"

"물론이네! 나를 대신하여 그를 축하해 주게. 독일군의 많은 잠수함들은 무자비하게 파괴되어야 마땅해."

쿠즈네초프가 출근 준비를 하자 침실에서 아내 베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가는 거야, 콜랴?"

"응, 오늘은 일찍 출근해야 해. 마저 자 베로치카..."

쿠즈네초프의 머릿속엔 자보론코프가 잘 도착했는지, 그가 임무를 잘 완수했을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다행히 자보론코프 장군은 쾌활하게 레닌그라드에서 돌아왔다. 그의 얼굴 가득 행복이 숨 쉬는 것처럼 보였다.

"자, 그래서..." 그가 테이블에 앉아 서둘러 얘기를 시작했다. "에젤 섬에서 이륙해 바다를 가로지르면 베를린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프레오브라젠스키와 항법사 코클로프가 미터 단위로 정확히 계산했습니다. 베를린으로 가는 길 1,760km 중 300km 이상이 바다이고 나머지는 육지입니다. 비행 고도는 최대 8,000m가 좋습니다. 충분히 실현 가능한 계획입니다."

"좋아, 작전 계획에 대해 더 자세히 논의하고 스타브카로 가보겠네." 쿠즈네초프는 자보론코프의 빠르고 열정적인 임무 수행에 만족해하며 말했다.

스탈린은 쿠즈네초프의 계획에 단번에 사로잡혔다. '괜히 제독을 비난했군.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영리한 친구였어. 콧대가 하늘을 찌를 수도 있으니 이런 칭찬은 하지 않겠지만... 첫 비행을 할 때 악수 정도는 해줘도 괜찮겠지.' 스탈린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쿠즈네초프는 테이블 위에 지도를 펼쳤다. 에젤 섬과 베를린이 빨간색 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쿠즈네초프는 작전 계획을 상세히 보고했고 스탈린은 가끔 질문을 던지며 그의 말을 차분하고 주의 깊게 들었다.

"쿠즈네초프 동지, 그대의 계획은 매우 설득력 있군." 스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르조미 한 잔을 따라 마셨다. 이미 그의 기분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발트해 파일럿들이 성공한다면.. 베를린 폭격은 정치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파장을 일으킬 거네. 히틀러는 모든 소련 항공이 파괴되어 루프트바페가 하늘을 지배하고 있다고 전 세계에 나팔을 불고 있어. 이제 파시스트들의 환상을 부숴줄 때가 왔지..."

해군 참모부가 제시한 베를린 폭격 계획이 스타브카의 승인을 받았다. 스탈린은 가능한 한 빨리 작전을 수행하라고 강조하면서 쿠즈네초프를 바라보았다.

"이제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은 그대에게 있네. 그대가 쓴 문서는 내게 맡기고, 물어볼 게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전화하도록."

스탈린이 콧수염이 흔들릴 정도로 웃으면서 말했다.

"내가 전에 자네한테 뭐라고 했었는지 기억하나?"

쿠즈네초프도 따라 웃으며 대답했다.

"지독한 이상주의자입니다!"

"실현 가능한 이상이라." 스탈린이 씁쓸하게 말했다. "이제 내가 늙은 거 같구먼..."

 

 

쿠즈네초프는 밤늦게 자보론코프 장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짧고 간결하게 말했다.

"내일 밤 돌고래 15마리가 목적지로 향할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그래, 세묜 표도로비치! 행운을 비네!"

8월 8일 밤, 폭탄을 가득 실은 15대의 폭격기가 이륙하여 제국의 수도를 향해 항로를 설정했다. 그들은 높은 고도로 비행하여 대공포와 적 전투기로부터 안전하게 이동했고 모든 폭격기가 폴란드의 시비노우이시치에, 슈체친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밝게 빛나는 베를린이 보였다. 분명히 히틀러는 소련 비행기가 여기까지 올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선두에서 비행하던 프레오브라젠스키 중령이 전 파일럿들에게 무전으로 명령을 내렸다.

"베를린이 우리 밑에 있다! 각자 위치로!..."

베를린 중심부에 고폭탄과 소이탄이 쏟아졌다. 폭발이 제국의 수도를 뒤흔들고 여러 개의 화재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무전사 크로텐코 중위가 프레오브라젠스키의 명령에 따라 암호화하지 않은 공개 무전을 보냈다. 독일도 손쉽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는 베를린, 베를린 폭격 완료! 이제 집에 가자고!] 그 순간 수십 개의 탐조등 빛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대공포가 발포되고 포탄이 기체 근처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속도를 줄이지 말고 항로를 유지하라!" 프레오브라젠스키가 무전으로 외쳤다.

한편 에젤 섬의 비행장에 있던 통신 요원들은 폭격기들이 보낸 현장 사진을 받았다. 그것은 곧바로 자보론코프에게 전달되었고 사진을 보는 그의 심장이 흥분으로 날뛰기 시작했다. "정말로 베를린에 폭탄을 떨구었군! 그들이 돌아와 무사히 착륙하면 인민위원 동지께 전화하겠네." 이제 자보론코프는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그는 옷을 입고 마당에 나가 섬 위로 밝아오는 여명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바다는 왠지 낯설고 황량한 느낌이었고 최근 폭풍의 여파로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보론코프는 눈이 아플 때까지 하늘을 응시하다가 저 멀리 거친 엔진 소리가 들려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영웅들이 무사히 돌아오고 있었다....

아침 10시에 자보론코프와 통화를 한 후 쿠즈네초프는 스타브카로 향했다. 8월 8일은 마침 스탈린이 최고 사령관으로 임명되는 날이었다. 쿠즈네초프가 축하를 건네자 스탈린은 감사를 표한 다음 평소와 같은 어조로 물었다.

"베를린이 폭격을 당했나?"

"어제 15대의 폭격기가 제국의 수도를 강타했습니다..." 그리고 쿠즈네초프는 작전의 세부 사항을 설명했다.

몰로토프가 주저 없이 쿠즈네초프를 칭찬했다.

"해군이 파일럿들의 코를 눌러줬군요!"

쿠즈네초프는 그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말을 이어갔다.

"모든 폭격기가 무사히 비행장으로 복귀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폭격기 한 대가 착륙하다 날개를 나무에 부딪혀 추락해 파일럿이 사망했습니다. 발트함대의 트리부츠 제독과 항공대 사령관 사모킨 장군에게 그 영웅을 명예롭게 묻으라고 명령했습니다."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말이 맞아, 발트해 해군들이 잘 해냈군. 아주 좋아. 베를린에 더 많은 폭격기를 보내도록 하게." 스탈린이 쿠즈네초프에게 다가가 따뜻하게 악수를 청했다. "성공한다면 악수를 해주기로 했었지, 약속을 지키겠네, 이상주의자 동지." 스탈린의 얼굴에 미소가 물결쳤다.

베를린을 향한 공습은 계속되었다.

 

 


📝 같이 읽어보기

 

✴️ 1941년 소련 발트함대 항공대의 베를린 폭격

 

Бомбардировки Берлина советской авиацией в 1941 году — Википедия

Материал из Википедии — свободной энциклопедии Бомбардиро́вки Берли́на в 1941 году́ — серия авианалётов на столицу гитлеровской Германии

ru.wikipedia.org

 

🎥 베를린 폭격을 소재로 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