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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소설]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3장 (3)

by 쿠악이 2023. 12. 12.

그림작가: 이고르 라진스키

 

 

미코얀은 스탈린의 눈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그의 분노로부터 쿠즈네초프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말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자네는 수병들이 육지에서 싸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도 마찬가지일세. 그 누가 알았겠나? 그리고 해군 일은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였네. 스탈린 동지는 온 나라를 살피고 있어. 이제 서로를 비난하는 것은 그만두고 어떻게 상황을 타개할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게 어떤가."

한결 가라앉은 분위기에 힘을 얻은 미코얀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서, 보로비예프 장군이 한 시간 전에 저를 찾아와 북방함대에 연료와 디젤유를 한도 이상으로 공급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골로프코가 벌써 그 많은 비축량을 다 소진한 겁니까?"

"스탈린 동지가 연합군이 돌아가는 길에 무르만스크와 아르한겔스크에서 연료를 보충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수 천 톤의 연료입니다. 그래서 골로프코가 걱정하는 겁니다."

"국방위원회에 요청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보급하겠습니다." 몰로토프가 말했다.

"이미 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쿠즈네초프가 조심스럽게 반박했다.

"트리부츠가 소총 5천정을 보내달라 해서 갈레르 제독이 요청서를 제출했지만 아무것도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전 이제 어디로 가서 요청해야 합니까? 내일 국방위원회 의장(스탈린)에게 가보려고 했습니다만..."

모두가 스탈린을 바라봤고, 그는 조용히 전화기를 들고 즈다노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일세, 안드레이 알렉산드로 비치. 그쪽 상황은 어떤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고? 별 새로운 것도 없구만 그래."

스탈린이 웃었다가 곧 얼굴을 굳혔다.

"쿠즈네초프가 트리부츠의 해병대를 무장시킬 무기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트리부츠가 육군에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지? 책임지고 싶지 않았나?"

"아닙니다. 제 잘못입니다,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즈다노프가 부드럽게 용서를 구했다.

전화를 끊은 스탈린의 시선이 몰로토프로 향했다.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해군에 소총을 긴급히 보급하게. 그리고 쿠즈네초프 동지, 그대는 언제 받을지 기다리지만 말고 당당하게 요구하게. 아니면 두렵기라도 하나?"

"예, 두렵습니다."

"무엇이?"

쿠즈네초프가 스탈린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요, 스탈린 동지."

"바보 같긴! 내가 뭐 뿔 달린 악마라도 되나?! 잔인하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우리와 파시스트 중 누가 승자가 될지 결정되고 있네! 지금은 서로를 두려워할 때가 아니라 어깨를 굳게 맞대고 힘을 합쳐야 할 때야! 나는 그대들이 조금도 두렵지 않네!"

스탈린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냉정하게 상황을 해결해 보자고. 결국 독일군은 오데사를 점령할 것이고 그다음은 세바스토폴, 캅카스의 석유를 노리겠지..."

쿠즈네초프는 새벽 일찍 깨어나 창밖을 보았다. 하늘은 아직 짙은 푸른색이었고 회색 구름 조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페쩨르에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댔지. 우비를 가져가야겠어.' 아내와 아이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살금살금 부엌으로 간 쿠즈네초프는 그곳에 있는 아내 베라를 보고 깜짝 놀랐다.

쿠즈네초프가 그녀의 등 뒤로 조용히 다가가 물었다.

"여기서 뭐해?"

"꺅!"

놀란 베라가 돌아보자 장난스럽게 웃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도 따라 웃으면서 말했다.

"레닌그라드로 간대서 짐 싸고 있었지. 가방은 거의 다 쌌어. 면도기도 넣는 게 좋겠지? 가는 길에 면도하게."

"그래, 면도기가 제일 중요하지, 길이 아니라 배의 선실이나 호텔 어딘가에서 면도하겠지만!"

그가 몸을 숙여 아내의 코에 키스했다.

"당신은 언제나 아름다워. 베룬치크(베라의 애칭)."

부끄러운 베라가 화제를 돌렸다.

"7시까지 비행장에 도착해야 하지?"

"응. 아마 조종사가 이미 날 기다리고 있을 거야..."

그리고 그때 전화가 울렸다. 샤포시니코프 원수였다.

"친애하는 동지, 여행 계획이 조금 변경됐네. 스타브카가 몰로토프, 코시긴, 보로노프도 레닌그라드에 보내기로 결정해서 그들과 함께 가게 될 거야. 그러니 오전 8시까지 총참모부로 오게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리스 미하일로비치. 절 기다리고 있을 조종사에게 알리고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취소됐대?" 전화를 끊자 베라가 물었다.

"아니, 몰로토프와 다른 동지들과 함께 가게 됐어."

쿠즈네초프가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키스하고 속삭였다.

"사랑해... 아이들을 잘 부탁해."

"집에 전화할 수 있어?"

"시간이 나면..."

그리고 쿠즈네초프와 대표단들은 하마터면 적의 손아귀에 넘어갈 뻔했다. 그들은 아무 일 없이 체레포베츠에 도착해 기차로 갈아탔다. 밤이 돼서야 므가 역에 도착했고, 기차에서 내리자 융커들의 비행기가 와서 철도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레일이 파괴되는 바람에 역장은 귀빈들을 수레에 태워 보낼 수밖에 없었고, 새벽에 레닌그라드에 무사히 도착했을 때 쿠즈네초프는 므가 역이 나치에게 점령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게 누군가!" 보로실로프가 쿠즈네초프를 보며 반갑게 외쳤다. "해군 총사령관이 왔으니 이제 해군 포병들이 최대로 작동하겠군!"

"여태까지 절반만 작동했습니까?" 쿠즈네초프가 웃으면서 받아쳤다.

"그래, 아주 가끔..."

둘은 몰로토프와 대화 중인 즈다노프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코시긴과 보로노프는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 자신들의 수첩을 꺼냈다.

"여기는 무척 덥습니다, 동지들. 너무 더워서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입니다." 즈다노프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독일군이 라도가 호수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이 호수를 점령한다면 완벽한 레닌그라드 포위가 완성될 겁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지금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보로실로프가 진심 어린 목소리로 공감했다.

회의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용감한 자들에겐 항상 운명이 뒤따른다며, 즈다노프가 몰로토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클림과 저는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승리를 거두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국 승리하는 것은 우리일 것입니다!"

즈다노프가 몰로토프를 지휘소로 초대해 지도를 보며 작전 상황을 설명하겠다고 하자 쿠즈네초프가 몰로토프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전 이만 따로 행동해도 되겠습니까? 트리부츠 제독이 함대 본부에서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이사코프 제독이면 충분하네. 그런데 그는 어디 있나? 밖에 있는 거면 이리로 오라고 하게."

트리부츠와 그의 참모 판텔레예프 제독은 함대 사령부에서 해군 총사령관을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내 쿠즈네초프가 등장하자 둘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특히나 반가워하던 트리부츠는 쿠즈네초프가 아직 아침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듣고 즉시 부관에게 식탁을 차리라고 명령했다.

"귀한 손님이니 존경과 경의를 담아 차리게!" 트리부츠가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부관에게 외쳤다. "참, 보드카 두 병도 가져와!"

함대의 상황에 대해 논의할 때 트리부츠는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고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천성적으로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고, 젊었을 때 이러한 솔직함으로 인해 심한 처벌들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그 태도를 고수했다.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못 본 새에 흰머리가 많아졌어. 탈린에서 크론슈타트로 함선을 옮기다가 다 새버린 건가?" 쿠즈네초프가 향기로운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물었다. 그의 입에는 보이지 않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아니면 이동 과정에서 배를 잃은 탓인가?"

트리부츠가 깊게 한숨을 내쉬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두 가지 모두 큰일이라 처음에는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했습니다. 예, 저흰 이동 중에 구축함, 잠수함, 수송선들을 많이 잃었습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일주일 뒤에는 베를린을 공격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제 섬으로 폭탄과 연료를 운반할 여력이 안됩니다... 그나저나, 스탈린 동지께서 저희의 베를린 폭격을 어떻게 평가하셨습니까?"

"자네의 위업을 아주 높이 평가했지! 자신을 대신해 관련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훈장을 수여하라고 명하셨네.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자네에겐 개인적으로 악수도 해주라고 하고 말이야."

"전 훈장을 원치 않습니다." 트리부츠는 당황스러웠다. "행복은 용감함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용감함 자체에서 오는 거니까요..."

"됐네,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어쨌거나 자네는 상을 받게 될 거야. 그것도 아주 큰 것들로. 그리고 이 작전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인 사람들은 소비에트연방영웅으로 추천할 예정이네. 아 참, '막심 고리키' 순양함은 수리가 다 됐나? 한번 직접 보고 싶네."

"어제 수리가 끝나서 항구에 있습니다.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막심 고리키'는 자랑스럽고 위엄있게 정박되어 있었다. 갈매기들이 그 위에서 폭풍을 예고하듯 시끄럽게 울어댔다. 쿠즈네초프가 흑해 함대에서 복무할 때부터 알고 지내던 순양함 사령관 페트로프 대령이 웃으며 다가왔다. 오랜만의 재회는 따뜻하고 정겨웠고 그들은 여태까지 하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어쩌다 적 기뢰에 걸린 건가?"

질책이 아니었기에 페트로프는 편안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정말 바보 같은 사고였습니다. 브도비첸코 소장과 그의 함선들이 핀란드 만 입구에 기뢰를 설치하고 있었고 저희는 그들을 엄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기동 중 방향을 틀 때 독일 기뢰를 건드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타쿠나 등대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순양함에서 하룻밤을 보낸 쿠즈네초프는 아침에 오라니엔바움을 거쳐 크론슈타트로 향했다. 넓은 페트로브스카야 항구가 그를 반겼다. 희미한 안개 사이로 쿠즈네초프는 전함 '옥챠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와 전함 '마라'를 보았다. '마라'라는 이름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의 자코뱅 지도자 중 한 명인 장폴 마라를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었다. 1793년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민중 봉기를 로베스피에르와 함께 이끌었던 장폴 마라는, 지롱드파의 권력을 전복시키는데 성공한 후 반혁명 세력에 의해 암살당했다.

"전함 함포로 직접 사격이 될 것 같나?" 쿠즈네초프가 트리부츠에게 물었다.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트리부츠가 찬바람에 몸을 떨었다. "저는 적의 공중 공격이 걱정됩니다. 아마 그들은 항공기로 저희를 방해할 겁니다. 이게 제가 전에 전화로 말한 두통의 원인입니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 전투기로 엄호하면 되지. 해군 항공대 사령관에게 명령하게."

쿠즈네초프는 탈린에서 크론슈타트로 함대가 이동하는 동안 침몰한 함선의 승조원들을 만났다. 병사들과 대화를 나누던 중 큰 키에 검은 눈썹을 가진 우크라이나인 수병이 물었다.

"저희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되는 겁니까?"

"다른 함선으로. 그리고 원하는 사람은 언제든지 해병대로 갈 수 있네..."

"결국 해군도 육지에서 시작되니, 가슴을 펴고 조국의 땅을 지켜야겠지요." 침몰한 구축함 '그녜브니'의 건장한 갑판장이 말했다.

쿠즈네초프는 기지와 전투 지역을 돌아다니며 함선과 함대를 방문하고 장병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면서 그는 크론슈타트와 함대의 운명이 걸린 전투에서 현재 가장 위험한 곳은 핀란드만 남쪽 해안에 있는 크라스나야 고르카 요새 지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트리부츠도 동의하면서 그곳의 해군들이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말해줬다.

"그렇다면 한번 거기로 가보는 게 어떤가?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네..."

저녁 무렵에 그들은 요새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찬바람이 불어오고 쌀쌀한 날씨였다. 회색 눈을 가진 덩치 큰 크라스나야 고르카 지휘관이 쿠즈네초프에게 자기소개를 하며 인사했다. 쿠즈네초프가 어떻게 지내고 있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제독 동지, 독일군이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크라스나야 고르카를 향해 기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요새 외곽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고 방금 지원군을 보냈는데 무기가 없습니다. 수류탄도 거의 없고 소총은 다섯 명 중 한 명만 있는 꼴입니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그걸 왜 내게 요청하는 건가?" 쿠즈네초프가 웃으면서 눈동자를 옆으로 굴렸다. "여기 내 바로 옆에 함대 사령관이 있잖나?"

지휘관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당황스러운 트리부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함대 사령관님이 배의 온갖 곳을 털어 가진 모든 것을 내주었습니다. 이제 창고엔 쥐만 돌아다닙니다."

"그건 좀 너무했군, 지휘관!" 쿠즈네초프가 웃으면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래서, 한번 말해 보게. 독일군이 요새를 점령할 것 같나?"

"그들은 요새 대신 엿이나 먹고 갈 겁니다." 지휘관이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다.

'그런 지휘관들이 있어서 레닌그라드가 버티고 있는 거야.' 쿠즈네초프는 기분 좋게 본부로 돌아왔다. 함대의 모든 지휘관들은 이미 모여 해군 총사령관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온 쿠즈네초프는 트리부츠 제독의 옆자리에 앉았다.

"동지 여러분, 함대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기 앞서 탈린에서 크론슈타트로의 재배치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우리는 15척의 배를 잃었습니다!"

"그리고 31척의 선박도 잃었습니다." 판텔레예프 제독이 덧붙였다.

"적지 않은 손실입니다." 쿠즈네초프가 침울하게 말했다. 그는 함대 사령부가 탈린 방어에 대한 위험을 제때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트리부츠는 쿠즈네초프가 함선 손실에 대해 책망하는 것을 들으며 신경이 곤두섰다. 만약 쿠즈네초프가 스타브카에서도 이런 말을 한다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것이 분명했다. 트리부츠는 스탈린이 함선을 잃은 제독들에게 얼마나 가혹한지 잘 알고 있었다.

"구축함 5척을 잃은 게 전부 제 잘못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트리부츠가 쿠즈네초프를 노려봤다. 그는 쿠즈네초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맹렬히 말하기 시작했다. "전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했습니다. 탈린에서 크론슈타트까지 이동하라는 명령을 함대에 내렸고 함대는 제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우리는 손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말 그대로 함선들은 기뢰 밭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트리부츠의 감정이 격해졌고 그의 목소리는 어둡고 낯설게 들렸다. 쿠즈네초프는 여상하게 말했다.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그게 함대 사령관의 책임이네. 자네는 함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어. 그러니 동지 여러분, 배를 잘 지켜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힘겨운 투쟁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해군 총사령관이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트리부츠 함대 사령관의 말은 이미 들었으니 유리 알렉산드로비치에게 발언권을 주도록 하겠습니다."

유리 알렉산드로비치 판텔레예프는 어색하게 연단에 올라와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어내고 쿠즈네초프를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배를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배를 잃는 것은 팔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배 앞에 기뢰 밭이 있고 우회가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명령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배가 파괴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사자의 갈기를 가진 자는 결코 토끼가 될 수 없습니다.(용감한 이는 겁쟁이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함대 사령관은 사자의 갈기를 가진 자입니다..."

쿠즈네초프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트리부츠를 바라봤다. 트리부츠는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고 굳은 얼굴로 괜히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을 쏘아봤다. 판텔레예프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 여정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고려하면 저희의 손실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는 함대가 탈린을 떠난 후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한코 반도 방어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기지는 적의 배후에 위치하게 되었고, 이제 배들은 그곳을 지나갈 수 없게 됐다. 카바노프 장군*이 분투하고 있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세르게이 이바노비치 카바노프: 한코 방어의 영웅, 해군 소속.)

"우리는 절대 한코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런다면 한코의 독일군은 전부 레닌그라드로 몰려갈 겁니다."

"동의합니다." 트리부츠가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카바노프 장군의 상황은 압니다. 하지만 지금 어느 곳이 안 어렵겠습니까?" 그러고는 쿠즈네초프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저는 이제 잠수함에 대해 더 얘기하고 싶습니다만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쿠즈네초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어떠셨습니까?" 쿠즈네초프가 호텔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트리부츠가 물었다. "마음에 안 드셨다면 죄송합니다, 저희 참모들이 좀 할 말을 다 하는 편이라서요..."

"무슨 걱정을 하는 거야?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쿠즈네초프가 당황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번 회의는 만족스러웠네. 나는 자네의 장교들이 명령이라면 다시 기뢰 밭을 건널 용기가 있다는 걸 느꼈어. 나한테도 사자의 갈기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였어도 스타브카의 명령이었다면 기뢰 밭을 뚫고 갔겠지." 쿠즈네초프가 외투를 입고 걸이에서 모자를 꺼내 쓰며 말했다. "오늘은 피곤하니 이만 가보겠네, 내일 8시에 만날 수 있겠나?"

"예, 불면증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있습니다..."

쿠즈네초프가 보로실로프를 찾아갔을 때 원수 대신 이사코프 제독이 그를 반겼다. 이사코프가 환한 얼굴로 외쳤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당신이군요!"

"드디어 실물로 보니 어떻습니까?" 쿠즈네초프는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여기 상황이 매우 어렵더군요..."

"당연한 말을! 도시와 함대 모두 위태롭습니다. 저희가 과연 이 위협을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크라스노그바르데스크 주변에 독일군 8개 사단, 보병 5개 사단, 기동 1개 사단이 모였습니다." 이사코프가 지도에 검은 십자가를 표시하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적의 주 공격이 예상됩니다. 적 보병 3개 사단이 콜피노 지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희 해군은 어디서 싸우고 있습니까?"

"사방에서요! 지금 우리는 파라필로 대령이 이끄는 첫 번째 독립 해병 여단을 크라스노예 셀로에 보내고 있습니다만 이걸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더 많은 해병 대원을 모집할 수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그때 보로실로프 원수가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직 있었군?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와보니 어떤가. 우린 여기서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네..." 보로실로프가 웃으면서 농담조로 말했지만 그의 미소는 어딘가 굳어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전에 없던 깊은 주름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독일군이 밀어닥치고 있고 방어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

"레닌그라드가 함락될까요?" 쿠즈네초프가 심각하게 물었다.

"나도 그 가능성 때문에 괴롭네." 보로실로프가 괴롭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는 국방위원회의 결정으로 북서부 전선 사령부가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제 전선들은 스타브카 직속이었다. "방금 모스크바와 통화하고 온 길이네. 이제 난 총사령관이 아니라 레닌그라드 전선 사령관인 거지! ...기분이 좋진 않아. 아무튼, 해군에 관해서 하나 묻고 싶은데 트리부츠가 크론슈타트의 배들이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얘기해 줬나?"

"예, 이번에 직접 보고 왔습니다."

"그래. 자네가 스탈린에게 잘 말해주게. 상황이 아주 안 좋아. 트리부츠가 얼마나 걱정하는지 아나? 무언가 조치가 있어야 하네."

"걱정 마세요, 사흘 후에 모스크바로 돌아가서 스타브카에 모든 걸 보고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네. 옆방에 내 참모총장 포포프 장군이 있는데 그와 얘기 좀 해보겠나? 전함과 순양함이 육군에 화력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해하네."

"알겠습니다, 클리멘트 예프레모비치."

쿠즈네초프는 늦은 밤에서야 함대 본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본부에서 그는 소련군이 네바 강 오른쪽에서 신야비노까지 철수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다음날 독일군이 실리셀부르크를 점령하고 라도가 호수에 도달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마침내 레닌그라드가 포위되었다!

"정말 나쁜 일이야. 이제 독일군은 네바 강을 넘으려 하겠지." 쿠즈네초프가 우울하게 말했다.

"그들은 결코 건너지 못할 겁니다." 트리부츠가 열렬히 반박했다. "일주일 전 군사위원회의 명령에 따라 구축함, 순찰선, 소해함이 소속된 네바 강 소함대가 창설되었습니다. 소함대 사령관인 체로코프 대령이 독일군을 막기 위해 55군과 42군를 지원할 것입니다. 또 넵스카야 두브로브카 지역에 전함 '마라'와 '옥챠브리스카야 레볼루치야'에서 떼온 대형 포로 이루어진 포대를 설치했습니다."

"순양함 '아브로라'의 포는?"

"두더고프와 풀코보 지역에 설치했습니다." 보고를 마친 트리부츠가 한동안 침묵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저는 이런 지옥 같은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가 이륙 준비를 하는 '더글러스' 비행기를 보며 말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다가와 비행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소리쳤다.

"그래, 이만 가보겠네!" 쿠즈네초프가 트리부츠의 손을 굳게 맞잡았다. "조금만 더 버텨주게, 블라디미르 필리포비치. 그리고 스타브카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겠지만 단 한 척의 함선도 적의 손에 넘어가선 안되네. 알아 들었나? 단 한 척도!"

밤하늘로 치솟는 비행기를 보며 트리부츠가 생각했다.

'그럼 우리가 자침시키라는 건가? 아니, 절대 안 돼...'

쿠즈네초프는 밤늦게 모스크바에 도착했다. 어둠이 짙게 드리운 수도는 마치 빛 한 점 없는 바다에 떠있는 배를 연상케 했다. 여행 가방을 들고 비행기에서 내려 출구로 향하자 알라푸조프 제독이 그를 반겼다.

"잘 다녀오셨습니까,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가족분들 모두 잘 지내고 있지만 아내분이 많이 그리워하시더군요."

"그래? 그럼 최고 사령관께 더 이상 출장을 보내지 말아 달라고 해야겠군?"

알라푸조프가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자 쿠즈네초프가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들은 빠르게 인민위원회로 향했다. 외투를 벗은 쿠즈네초프가 알라푸조프에게 해군의 최신 동향에 대해 물었다.

"오데사는 어떤가?"

"어제 선도구축함 '하르코프'를 탄 옥챠브리스키 함대 사령관이 병력과 무기, 탄약과 함께 그곳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마침내 지원군이 도착하고 있군. 다행이야.' 그리고 아쉽게도 둘의 보고는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샤포시니코프 참모총장이 쿠즈네초프를 불러냈고 질문 세례가 쏟아졌다.

"주코프 제독이 오데사에서 일을 잘 하고 있나?" 샤포시니코프가 '카즈벡'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그를 잘 알겠지? 어디 그에 대해 간략하게 말해주게. 스타브카에서 그를 오데사 방어 지역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걸 지지해 줬으니 충분히 들을 자격이 있다고 믿네."

"주코프 제독은 용감하고 대담한 지휘관입니다. 저는 가브릴 바실리예비치를 스페인에서 알게 되었는데 어디서 싸우고 싶냐고 물어보니 배에서 싸우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의 요청을 들어줬고 주코프는 발레아레스 제도에 있는 프랑크파의 소굴 근처 마온 기지로 위험한 임무를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그는 또한 반란군 함선과의 전투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저는 그에게 등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그를 신뢰합니다."

"잘 알겠네, 니콜라이." 샤포시니코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쿠즈네초프를 바라봤다. "오데사에는 내가 지원 병력을 보낼 것이니 한시름 놓게!"

나중에 스타브카의 명령에 따라 오데사로 10,000명 이상의 병력이 보내졌다.

총참모부에서 돌아온 쿠즈네초프는 알라푸조프 제독과 대화를 계속했다.

"골로프코는 어떤가?"

"어제 북방함대 참모총장 쿠체로프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골로프코는 프롤로프 장군의 제14군 사령부에 있다고 합니다. 그곳 상황은 쉽지 않고 독일군이 무르만스크 방향으로 세 번째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산악군단 '노르웨이'가 서부 리차 외곽에서 전투를 벌이면서 1.5~2 킬로미터 전진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바다의 상황은 조금 더 낫습니다. 바르되 지역에서 우트킨 소령의 잠수함 'K-2'가 4개의 기뢰둑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다 하바켄 등대 지역에서 독일 대형 수송선을 발견했는데 어뢰 공격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마침 잠수함에 있던 사단 사령관 마고메드 가지예프 중령이 우트킨에게 수면 위로 떠올라 적에게 사격을 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수송선은 침몰했고 다른 잠수함 'M-172'의 함장 피사노비치도 대형 수송선을 침몰시켰다고 합니다."

"북방함대 잠수함들이 잘 활약해 주고 있군. 가지예프와 피사노비치를 직접 본 적 있었는데 경험 많은 훌륭한 지휘관들이란 걸 느꼈었네. 앞으로도 큰 전투적 성과를 보여주겠지."

그리고 이번에도 쿠즈네초프의 말은 '크렘린 직통 전화'의 벨 소리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전화를 받자 포스크레비셰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탈린 동지가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부디 서둘러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