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크렘린으로 가 응접실에서 외투를 벗은 쿠즈네초프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얼굴은 회색빛이고 눈에는 큰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스탈린의 사무실에 들어서며 말했다.
스탈린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쿠즈네초프에게 보로실로프 대신 게오르기 주코프 육군 대장이 레닌그라드 사령관으로 임명된 것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아뇨, 처음 듣습니다. 레닌그라드에서 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코프는 지금 거기 있네." 스탈린이 파이프를 꺼내 담배를 채우고 탁자 가장자리에 놓고 습관적으로 사무실을 걷기 시작했다. "탈린에서 후퇴한 배들은 어떻게 되었지?"
쿠즈네초프는 크론슈타트까지 가면서 손실이 있었지만 함대의 전력은 건재하며 발트함대의 힘을 꺾으려는 독일 항공기들의 공격이 실패했다고 보고했다.
"얼마나 많이 잃었나?" 스탈린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이었다.
"수송선을 제외하면 구축함 5척과 잠수함 2척을 잃었습니다. 전함과 순양함의 피해는 없습니다." 쿠즈네초프는 특히나 끝말을 강조했다.
"상당한 손실이군. 무슨 일이 있던 건지 설명해보게."
"독일군이 비행장을 점령하는 바람에 함선이 이동할 때 공중 엄호를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트리부츠 함대 사령관은 핀란드 만에 깔린 적의 기뢰를 과소평가했습니다. 그곳엔 최대 3,000개의 적 기뢰가 있었습니다."
"그럼 트리부츠의 잘못인가?" 스탈린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와 제 실책입니다. 함선들이 탈린을 떠나기 전 적의 포격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핀란드 만의 기뢰를 제거했어야 했습니다. 독일군이 주민다 곶에 포대를 설치하고 직접 포격을 가했습니다. 함선들은 밤에 기뢰 밭을 통과했는데 지옥 같았습니다." 쿠즈네초프가 서류 가방에서 지도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쳤다.
스탈린이 지도로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어디에 어떤 함선들이 있었나? 특히 전함과 순양함에 대해 알려주게."
해군본부에서 해도에 미리 표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스탈린에게 쉽게 설명할 수 있었다. 스탈린은 진지하게 경청하고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뗐다.
"레닌그라드의 상황이 매우 안 좋아졌어... 단 한 척의 배도 적의 손에 넘어가서는 안되네. 이 명령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엄중하게 처벌받을 거야." 그는 파이프를 집어 들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기침을 하며 스탈린이 쿠즈네초프를 똑바로 바라봤다. "발트함대 사령관에게 자침 준비를 하라고 명령서를 작성하게. 물론 최후의 경우에만 그래야겠지."
"저는 그런 명령서를 쓸 수 없습니다." 쿠즈네초프는 숨을 내쉬었다.
"어째서?"
"발트함대는 레닌그라드 전선 사령관 직속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최고 사령관의 서명이 있어야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해군 총사령관의 서명만으론 충분하지 않습니다."
쿠즈네초프의 얼굴 근육은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스탈린은 그의 확고함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조용히 사무실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입에서 긴 연기를 내뱉었다.
"샤포시니코프 원수에게 가서 그와 그대의 서명이 담긴 명령서를 준비하게."
'보리스 미하일로비치가 서명해 줄 것 같지 않은데.' 라고 생각하며 쿠즈네초프는 사무실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쿠즈네초프의 말을 듣고 샤포시니코프는 경악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쿠즈네초프! 이 문제는 순전히 해군 문제이니 나는 서명하지 않겠네!"
쿠즈네초프도 화가 나 말했다.
"정말 그러실 수 있습니까? 이건 최고 사령관의 명령입니다!"
"나는 해군이 아니네, 니콜라이." 원수가 부드럽게 말하기 시작했다. 샤포시니코프가 테이블의 서류를 가장자리로 옮겨 자리를 만들고 옆을 톡톡 두들겼다. "일단 내 옆에 앉아 명령서를 작성하게. 그 후 스탈린께 다시 한번 보고하러 가지. 그래서, 이건 자네 생각인가?"
"아뇨, 보리스 미하일로비치. 스탈린께서 레닌그라드 포기를 고려하고 준비하는 겁니다." 쿠즈네초프는 펜을 들고 단 한 문단만 써냈다. "읽어보세요, 이 정도면 충분하겠죠."
종이를 건네받은 샤포시니코프가 글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짧고 명확하군. 이제 최고 지도자께 가보세."
스탈린은 신중하고 조용하게 명령서를 읽었다.
"'모든 함선을 자침 시켜라...'"
"전 명령서에 서명할 준비가 됐습니다." 샤포시니코프가 말했다. "그리고 최고 사령관 동지도 같이 서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스탈린이 눈썹을 찌푸렸다.
"두 사람 모두 이만 가보게. 이건 내게 맡기고..." 무거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영국 해군성은 레닌그라드 함선들의 자침 준비가 시작되었고 독일군이 도시를 점령하면 소련 함선은 모두 폭파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소련 주재 영국 대사 크립스는 1941년 9월 12일 몰로토프에게 '소련 정부가 적의 손에 함선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레닌그라드에 있는 함선들을 자침 시킬 경우, 영국 정부는 전후 소련이 파괴된 함선들을 대신할 배들을 구하는 것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크립스가 처칠 몰래 단독으로 이런 메시지를 보내지는 않았겠지." 스탈린은 몰토토프가 가져온 문서를 보고 비웃었다. "영국의 도움은 필요 없네. 아주 동냥이라도 주는 것 같군." 다음날 스탈린은 처칠에게 답장을 보냈다. '필요한 경우 소련 함선들은 소련이 자침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에 대한 책임은 영국이 아닌 독일에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우린 독일에 피해 보상을 요구할 것입니다.' - 작가 A.Z.)
함선 자침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떤 배도 적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트리부츠가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스탈린이 쿠즈네초프의 자세한 보고를 듣고 물었다.
"예, 동지의 명령에 따라 자침 준비가 완료되고 있습니다..."
육군 대장 주코프는 9월 9일 레닌그라드에 도착했다. 스몰니에서 빠르게 전선 군사위원회 회의가 열렸다. 보로실로프 원수, 즈다노프 및 기타 군사위원회 위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주코프는 보로실로프에게 문서를 건네주었다. 클레멘트 예프레모비치가 그것을 큰 소리로 읽었다.
"보로실로프 원수. 국방위원회는 레닌그라드 전선 사령관으로 주코프 대장을 임명하니 그에게 전선을 넘겨주고 이만 돌아오시오. -스탈린." 보로실로프의 얼굴이 붉어졌다. "알겠네, 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 전선을 넘길 준비가 되었네."
"저도 준비되었습니다." 주코프가 어두운 얼굴로 대답했다.
새 전선 사령관 주코프가 회의에서 외쳤다.
"항복 준비는 너무 이릅니다. 우리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레닌 그라드를 방어할 것입니다!"
"배들은 어떡할까요? 자침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만..." 트리부츠가 물었다.
"전선 사령관으로서 명령하겠습니다. 모든 배의 자침 준비를 해제하고 함포를 끌어모아 적에게 포격을 가하도록 하십시오! 배를 침몰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 최후의 끝까지 적에게 공격을 해야 합니다!"
다음날 주코프는 스타브카에 전보를 보냈다. [전선 이양이 완료됐습니다. 주코프.] 그리고 9월 10일부터 11일까지 그는 밤새도록 즈다노프, 쿠즈네초프, 이사코프 제독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 레닌그라드 방어를 위한 병력과 자원을 동원하기 위한 추가 조치를 논의했다. 독일군은 이미 우리츠크 일부를 점령하였고, 푸르코브스키 고지대 지역에 큰 위협이 닥치고 있었다.
"당신, 함대 사령관." 주코프가 트리부츠를 보며 말했다. "해병대를 만들어 빠르게 전선으로 보내게. 또 단기간 내에 발트함대 해군들로 구성된 5-6개의 소총 여단을 창설하도록." 주코프가 이사코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당신은 함대사령관을 돕고 함선들의 포격 지원은 제42군 지원 위주로 진행하게. 알아 들었나?"
'새 전선 사령관은 능숙하게 지휘하는군. 마치 우리 해군 총사령관 같은 결단력이 있어.' 트리부츠가 생각했다.
나중에 피터호프 지역에서, 소련 해군은 적군의 후방에 해병 상륙부대를 배치했다. 주코프가 인정한 것과 같이, 해병들은 용감할 뿐만 아니라 극도로 대담하게 행동했다. 적이 바다에 있는 상륙부대를 발견하고 그들에게 강력한 포화를 가했지만 그것으로 해병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해병들은 무사히 상륙하여 독일군을 격퇴시켰다. 그 시점에서 독일군은 'schwarzer Tod'(흑사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이것이 바로 독일군이 소련 해병대를 부르는 별명이었다.
트리부츠는 사무실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테이블 위에는 통신 장비들이 놓여있었고 트리부츠는 주코프가 내린 자침 준비 해제를 해군 인민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상념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연히 보고해야지. 나는 해군 총사령관의 부하이기도 하니까.' 그러고 트리부츠는 쿠즈네초프에게 연락했다. 그는 쿠즈네초프가 상세한 사항에 대해 질문하고 무언가 새로운 지시를 내려주길 바랐지만 쿠즈네초프는 깔끔하고 간결하게 말할 뿐이었다.
"주코프 육군 대장의 명령을 잘 따르게."
1941년 9월 14일. 전쟁 85일째. 오데사 본부.
늦은 밤 오데사 방어 지구 군사위원회는 모든 예비군을 소진했으며 그닐리야코보-달니크-수호이 리만 선까지 후퇴할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스타브카와 해군 인민위원회에 보고했다. 만약 소련군이 저기까지 물러난다면 독일군은 더 쉽게 오데사를 폭격할 수 있게 되었다. 때문에 오데사 군사위원회는 소총 사단을 보내달라고 요청했고 향후 대대도 보충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이제 할 일은 답을 기다리는 것 밖에 없습니다." 주코프 해군 소장이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이런 혼란은 익숙합니다. 스페인에서 뼈저리게 겪었거든요."
"쿠즈네초프 해군 인민위원이 스페인에서도 사령관님의 상관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소프로노프 부사령관이 주코프에게 물었다.
"예, 부디 그가 우리에게 지원군을 보내주길 바라봅시다..."
우중충하고 흐린 우울한 아침이었다. 밤새 깨어 있던 오데사 방어 지구(OOP) 육군 담당 부사령관 소프로노프 장군과 오데사 방어 지구(OOP) 군사위원회 여단정치위원 아자로프는 나란히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일리야 일리치, 공문은 들었습니까?" 소프로노프가 물었다.
"우리 군대가 크레멘추크에서 후퇴한 것 말입니까..." 아자로프가 주코프를 피곤하게 바라보았다. "가브리일 바실리예비치, 순양함 '미코얀'이 적 포대를 계속 포격할 수 있겠습니까?"
"예, 순양함 함장 세르게예프 중령은 믿을만합니다. 그는 최후까지 명령을 수행할 겁니다. 세르게예프는 스페인에서 구축함 '발렌시아'를 지휘하면서 파시스트들을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주코프가 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스타브카에서 답은 없군요."
"해군 인민위원에게서도 없습니다." 소프로노프가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좀 더 기다려 봅시다." 주코프가 중얼거렸다. "저는 반격 작전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상 상륙부대의 도움을 받아 독일군을 전방에서 공격하고, 후방은 공수부대들이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성공적으로 적의 왼쪽 측면을 밀어낸다면 독일군이 도시에 퍼붓는 포화를 멈출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순간 당직 무전병이 뛰어들어와 큰소리로 외쳤다.
"스타브카에서 답이 왔습니다!"
무전병이 주코프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네주었다. 주코프는 그것을 소리 내 읽었다.
"오데사를 방어하는 장병들에게 스타브카가 요청합니다. 항공기와 무기를 보급 받아 6-7일 동안 지역을 사수하십시오, 스탈린."
"좋았어!" 소프로노프 장군이 외쳤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갈망하듯이 한 모금 빨았다. "이 정도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일방적인 명령만 받았고 아무도 우리의 의사를 궁금해하지 않았는데, 요청이라뇨! 그것도 최고사령님의..!"
"즉시 최고사령관님의 요청을 전 부대에 전달하고 스타브카에게 답장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이라고요!" 주코프 소장이 말했다.
나치가 모스크바에 이렇게 가까이 올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수도는 불안에 떨었다. 국방위원회는 스타브카와 회의에서 도시의 부분 대피에 관한 법령을 통과시켰고 스탈린은 사무실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엄중히 말했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대피에 관한 모든 것을 준비하게. 조국을 위해 적과 싸우는 것은 우리의 의무일세.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이 의무를 스스로 짊어져야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서는 안되네..."
'그래, 모스크바 외곽에서 혼란이 있었다지.' 쿠즈네초프가 한숨을 쉬며 집무실로 돌아왔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쿠즈네초프는 집에서 걱정하고 있을 아내에게 전화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수화기를 들고 아파트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베룬치크, 나야, 메드베드키 마을 출신 콜카." 쿠즈네초프가 조용히 말했다. "저녁에도 집에 못 갈 거 같아.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갈게..."
"무슨 일 있어, 여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있지... 나중에 다 설명할게. 어쩌면 당신이랑 아이들이 모스크바를 잠깐 떠나야 할지도 모르겠어."
"무슨 말인지 알겠어, 콜렌카. 피난... 말하는 거지?"
"그래. 아이들한테는 아직 말하지 마. 다른 사람들한테도 말하지 말고. 내일 봐, 베룬치크!"
전화를 끊고 잠시 담배를 피우면서 쉰 쿠즈네초프는 갈레르 제독과 알라푸조프를 사무실로 불렀다.
"스타브카에 다녀왔는데 모스크바 근처 상황이 악화됐다고 합니다. 국방위원회로부터 해군 인민위원회를 일시적으로 대피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쿠즈네초프가 갈레르를 보며 말했다.
"레프 미하일로비치 당신은 나와 함께 여기 남아서 해군 인민위원회의 작전 부서를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블라디미르 안토노비치는 쿠이비셰프로 가서 해군 주요 참모부와 관리 부서를 새로 조직하게 될 겁니다."
"전 준비됐습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알라푸조프가 대답했다.
모든 전선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지난 7월의 더운 어느 날, 쿠즈네초프는 갈레르에게 해군 예비 통신 센터를 설치하라고 지시했었다. 갈레르는 이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했다. 이를 위해 그는 볼가강 소함대의 기뢰부설함 '이세트'를 통신선으로 사용했다. 이제 이 배는 쿠이비셰프의 부두에 정박해 있었고, 전보와 라디오 연결이 설정되어 있었다. 폴라르니, 레닌그라드, 세바스토폴, 아르한겔스크와의 시험 연결도 진행되었다. 갈레르가 이 사실을 쿠즈네초프에게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
"그럼 이만 출발하게, 블라디미르 안토노비치. 레프 미하일로비치 당신은 작전 부서와 함께 스카코바 골목에 있는 집에 머무르세요. 그곳에 신뢰할 수 있는 통신장비들이 있습니다..."
스타브카와 총참모본부는 모스크바 방어를 위해 군대와 군사 장비들을 강화하고 있었다. 대피 계획에 대해 생각하던 쿠즈네초프는 총참모본부 부사령관 바실렙스키 장군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수도 방어를 위한 25개의 해병 여단 구성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바실렙스키가 물었다.
"문제없이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쿠즈네초프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아침에 제게 와주시길 바랍니다."
쿠즈네초프는 바실렙스키에게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사실 해군 참모부에서 배의 승조원들을 해병 여단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그리고 그중엔 갈레르 제독도 있었다.
"그건 전함들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일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이미 전문 인력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기뢰, 어뢰 전문가, 통신병, 전기기사 등... 젊은 병사들을 전문가로 훈련 시키는 것은 몇 달이 걸리는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레프 미하일로비치, 저도 당신만큼이나 배에 무엇이 좋고 나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문제의 본질을 보아야 하지, 피상적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쿠즈네초프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평소 선량하던 갈레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그가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의 못합니다! 당신은 지금 쉬운 길로 가려는 겁니다. 당신은..."
"저도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해군 인민위원인 것을 잊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내 명령을 따르는 것이지 토론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동안 두 사람 모두 말이 없었다. 쿠즈네초프가 갈레르를 쳐다보자 그는 매우 슬픈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한테 상처를 준 거 같아 쿠즈네초프의 마음이 안 좋아졌다. 쿠즈네초프가 조용히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외엔 달리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수도는 현재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스타브카와 스탈린 동지가 적이 도시에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필요하다면 배의 모든 승조원들을 내리게 해 수도 방어를 위해 싸워야만 합니다. 스타브카는 현재 25개의 해군 여단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린 배에서 지원자들만 자출하고 있죠. 기꺼이 지원한 용사들은 마지막까지 적과 싸울 것입니다."
쿠즈네초프가 잠시 멈췄다가 한숨을 쉬고 말했다.
"'쉬운 길'이라고 하셨죠. 전 당신이 해군에 모든 것을 바치고 봉사한 것을 존중합니다. 아마 해군 고위장관들 중에 당신에 비견될만한 인물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레프 미하일로비치, 나는 결코, 단 한 번도 '쉬운 길'을 택한 적 없으며 그러한 비난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갈레르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쿠즈네초프의 의중을 살피며 혼란스럽고 당황스러워했지만, 결국 쿠즈네초프의 말이 진실하고 옳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침내 갈레르가 눈을 뜨고 쿠즈네초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지나쳤습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쿠즈네초프는 침착하게 대화 주제를 돌렸다.
"자 이제, 레프 미하일로비치. 가서 어떤 함선에서 몇 명의 승조원들이 지원했는지 확인해 주시길 바랍니다. 한곳에서 너무 많은 지원자가 나왔다면 시정해 주세요. 당신 말대로 바다에서도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갈레르의 눈빛이 반짝였고 그는 방금 전과 완전히 달라 보였다.
해군 총참모부는 여단의 중추가 될 4만 명의 병사들을 함대에서 선발하여 배치시켰다. 쿠즈네초프는 모든 과정에서 국방위원회의 요구 사항이 철저히 이행되도록 엄격하게 감독했다.
저녁 늦게 이사코프 제독이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쿠즈네초프는 자신의 사무실에 방문한 방문객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반 스테파노비치?" 쿠즈네초프가 일어나 서둘러 그에게 다가갔다. "오랜만입니다, 동지! 그래서, 완전히 돌아온 겁니까?"
"예..." 이사코프는 떨떠름해 보였다. "계속 레닌그라드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 어색하군요. 어쨌든 귀환해서 좋습니다... 제 대리인 알라푸조프는 어떻습니까? 쿠이비셰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해군 인민위원회 본부와 지휘소를 세우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저도 얼마 전에 갔다 왔습니다. 그건 그렇고 페쩨르에서는 어떻게 지냈습니까? 이반 스테파노비치."
"사령관 보로실로프 원수와 함께 일하며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령관이 주코프 대장으로 교체되고 나서는 좀 힘들었습니다. 그는 냉철하고 어떠한 반대 의견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나를 볼 때면 등에 땀이 흐를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라도가 소함대 사령관 보골레포프의 일을 제외하면 주코프는 나에 대해 딱히 불만 없었습니다."
"보골레포프가 어쩌다 군사재판에 넘겨진 겁니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쿠즈네초프가 물었다. "샤포시니코프 원수에게 여쭤보니 그 건은 스탈린과 베리야가 맡았다고 암시해 줄 뿐이었습니다."
"보골레포프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저에게도 책임이 있고요. 빅토르 플라토노비치가 용감하고 용맹한 사람이라는 것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겁니다. 저는 그가 해군 사령부 작전 부서의 책임자였던 23년도부터 그를 알고 지냈습니다. 그때 저는 흑해 관측 및 통신 업무 부서의 책임자였습니다."
쿠즈네초프도 보골레포프를 잘 알고 있었다. 전쟁 전에 쿠즈네초프는 그에게 해양 무기 및 기술의 발전을 위한 장기 계획을 수립하도록 지시했었다. (보골레포프는 당시 해군대학의 전술 부서장이었다) 그의 무기와 장비 개발 계획은 좋았지만 전쟁으로 인해 실현될 수 없었다.
"독일군이 슐리셀부르크를 점령하고 라도가 호수에 도달했습니다. 레닌그라드 포위망이 완성된 거였죠. 주코프는 저를 불러서 누가 라도가 소함대를 이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일시적으로 보골레포프 대령이 맡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자원해서 소함대를 맡은, 용감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그때 레닌그라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주코프가 이사코프를 보며 말했다.
"라도가 소함대 사령관에게 함선들로 슐리셀부르크 지역의 전술 상륙을 도와 도시를 점령하고 남동쪽 방향으로 진격해 신야비노 지역에 있는 우리 군대와 합류하라고 전하게."
"상륙은 언제 실시할까요?" 이사코프가 물었다.
"2주 주지."
"그건... 너무 적습니다, 게오르기 콘스탄티노비치. 이런 작전을 서두르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사코프가 반대했다.
"더 이상은 못 주네, 해군! 보골레포프가 기한을 지키도록 잘 전하게." 주코프가 굳게 입을 다물고 대화가 끝났음을 알렸다.
보골레포브는 걱정하면서도 특유의 끈기로 상륙 작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작전 구성원들은 NKVD, 해군, 발트함대, 생도, 국경 경비대 등 잡다하게 이루어져 있었다. 9월 말에 세 차례의 전술 상륙이 이루어졌다. 상륙 부대는 포함으로부터 엄호 받았지만 '융커스'가 격렬하게 공격했고 독일 포병들은 미친듯한 포화를 퍼부었다. 상륙부대는 큰 손실을 입었고 당연히 슐리셀부르크도 점령하지 못했다.
주코프의 숨이 가빠졌고 그는 곧 폭발할 것 같았다.
"당신, 전에 보골레포프가 소함대 사령관으로 자원한 거라며 칭찬했었지. 가장 중요한 작전도 수행 못하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주코프가 표정을 구기고 단호하게 말했다. "보골레포프를 군사재판에 회부하겠네."
충격을 받은 이사코프는 상륙 부대를 준비할 시간이 없었고 공중에서 엄호할 수단도 없었다고 주코프를 설득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주코프는 냉혹하게 보골레포프를 재판에 회부했다. 보골레포프는 몇 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전방으로 보내졌다.
"-이런 일이 있었던 겁니다." 이사코프가 이야기를 마쳤다.
(보골레포프 대령은 41년 12월 말에 전선에서 돌아왔고, 42년 1월 쿠즈네초프는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 군사 해군 기지 보호에 대한 지침을 긴급하게 작성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자신 있습니다. 현재 탈린, 오데사, 세바스토폴이 싸우고 있으니 서둘러 준비하겠습니다."
"아마 직접 방문해 보는 게 좋을테지. 흑해함대가 적의 공격을 세 번이나 격퇴하면서 버티고 있네. 오데사를 방어하고 있는 주코프 제독과 다른 동지들과 얘기해 보게. 그들이 아주 도옴되는 말들을 해줄 거야. 자네는 발트함대에서의 경험이 있으니 괜찮겠지."
"언제 세바스토폴로 갈 수 있습니까?"
"내일 해군 주요 참모들이 가기로 했으니 그들과 함께 가게. 3월 말까지 작성해서 보고하도록! 알겠나?"
-작가 A.Z.)
쿠즈네초프는 이사코프에게 최신 상황에 대해 설명해 주며, 해군 여단을 구성하고 북부 항구로 향하는 연합군 수송대를 감독하는 일도 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 근처에서 곧 폭풍이 몰아칠 것 같습니다." 쿠즈네초프가 입술을 꽉 다물었다가 뗐다. "독일군은 결국 레닌그라드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으니 이제 수도에서 복수하려고 할 것입니다. 크림반도의 상황도 나쁩니다..."
10월 18일 제11군 만슈타인 (에리히 폰 레빈스키 만슈타인(1887-1973): 나치 전범, 1941년부터 크림반도에서 제11군을 지휘하고 1942년엔 레닌그라드 근처의 파시스트 군대를 이끌었다)과 루마니아 산악 군단이 공세를 개시하여 (표도르 이시도로비치)쿠즈네초프 육군 장군의 제51군을 밀어냈다. 오데사 전투로 약해진 페트로프 장군의 해안군도 적을 격퇴할 수 없었다. 독일군은 세바스토폴과 알루시타로 후퇴하는 소련군의 경로를 차단하고 케르치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이순 진지를 돌파하고 사키와 바흐치사라이로 진격했다.
'크렘린 직통 전화'가 울렸다. 쿠즈네초프가 수화기를 들었다.
"예, 보리스 미하일로비치!... 네, 이사코프 제독이 왔으니 이제 일을 좀 덜을 수 있겠죠. 그는 쿠이비셰프에 보내고 저는 갈레르와 함께 여기 남을 예정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울한 기분입니다. 육지 전선도 그렇고 해군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레브첸코는 어떻습니까?.. 이상하군요, 최고사령관께서 아무 말씀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쿠즈네초프가 방금 들은 정보를 공유했다.
"스타브카가 지상군과 흑해함대의 행동을 통합하기 위해 크림군 사령부를 창설했습니다. 지휘관으로 누가 임명됐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레브첸코 제독입니다! 내 제독들이 성장하는 것은 기쁩니다만, 너무 늦지 않았나 싶군요.."
수도에 밤새 눈이 내렸고, 쿠즈네초프의 집무실 밖에도 산더미처럼 눈이 쌓였다. 아침 햇살에 사방이 은빛으로 반짝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쿠즈네초프는 창밖을 보며 북방함대의 주요 기지가 있는 폴랴르니를 떠올렸다. 몇번이나 방문한 그곳은 갈 때마다 골로프코가 옆에 붙어 잠수함이 부족하다고 한탄을 해댔다. 기억에 잠겨있던 그때 뒤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갈레르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레프 미하일로비치." 쿠즈네초프가 웃으며 인사했다. "앉으세요. 기뢰 해제기 개발은 좀 어떻습니까?"
갈레르가 앉았다. 면도를 하고 콧수염을 다듬은 깔끔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언제 실망시킨 적 있습니까. 예상했던 것보다 일이 훨씬 복잡하긴 합니다. 과학자들도 고민하고 있고요... 그래도 결국 개발될 겁니다."
갈레르가 기침하며 손으로 배를 쓸었다.
"아무래도 탈이 난 거 같습니다, 통조림 때문인 거 같은데... 밤새 잠도 못 자고 열도 났습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 좀 받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당연하죠, 레프 미하일로비치. 제 차를 타고 가세요. 입구 바로 앞에 있습니다."
갈레르가 떠난 사무실은 조용했고 시계 초침이 똑딱이는 소리만 들렸다. 쿠즈네초프는 소파에 앉아 지난밤에 쿠이비셰프에서 돌아온 파일럿이 건네준 편지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아내 베라가 쓴 편지였다.
[사랑하는 콜렌카, 여보, 우린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무사히 도착했고 잘 적응하고 있어. 아이들도 괜찮아. 그래도 당신이 없으니까 허전하네. 몸조심 해. 전화할게. -당신의 사랑 베라]
'내일 내가 먼저 전화해야겠어.' 쿠즈네초프가 생각했다.
'[번역/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3장 (5) (0) | 2023.12.12 |
---|---|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3장 (3) (0) | 2023.12.12 |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3장 (2) (0) | 2023.12.12 |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3장 (1) (0) | 2023.12.12 |
[번역/소설] 불명예스러운 제독 — 제1부 2장 (5) (0) | 2023.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