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번역/회고록]

[번역/회고록] 해군에서의 체포 — 쿠즈네초프 제독

by 쿠악이 2023. 12. 12.

소련 해군의 아버지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쿠즈네초프

 

해군에서의 체포

 

1937년 11월, 태평양함대 사령관 G.P. 키레예프는 모스크바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기차역에서 그를 직접 배웅했는데 내게 지시를 내리던 그는 어딘가 다소 산만하고 불안해 보였다. 기차 안 좌석에 앉은 그는 슬퍼 보이기까지 했다. 그것은 평소같이 모스크바로 출장 가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키레예프 이전에 M.V. 빅토로프와 G.S. 오쿠네프가 비슷한 방식으로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키레예프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곧 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내게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함대 사령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12월 말에 내가 새로운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전보를 받았고, 약간의 불안함이 있었지만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젊음의 패기와 힘은 경험 부족을 어느 정도 보완해 주었다. 함대 사령관의 직무에 깊이 빠져들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고민도 많고 걱정도 많았다. 물론 함대를 맡기로 결정했을 때 쉬운 삶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해군의 급속한 성장과 국경을 견고하게 지켜야 하는 임무와 관련된 어려움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받은 충격, 지휘관들의 체포로 인해 더욱 복잡해지고 악화되었다. 그리고 내게 소속된 부하들에게도 탄압이 시작되었다. 비록 그들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당황스럽고 불안했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던 지난해의 일들이 떠올랐다. 스페인 내전에 군사 고문으로 파견 갔을 때, 수석 군사 고문 G.M. 슈테른의 부름으로 발렌시아에 갔던 적이 있었다. 그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슈테른은 평소처럼 "Salud, amigo"라고 인사하지도 않고 농담도 건네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모스크바에서 온 전보를 내게 건네주었다. 전보의 내용은 M.N. 투하쳅스키, I.P. 우보레비치, I.E. 야키르 등 주요 군 지휘관들이 체포되었다는 보고였다. 그들은 우리 군대를 이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끔찍한 범죄자로 몰고 갔나?

체포된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야키르뿐이었다. 1933년 그가 순양함 '크라스니 캅카스'를 방문했을 때 딱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반면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슈테른은 전보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모스크바에서 일하면서 업무 중이나 업무 외적으로나 그들을 만나며 지냈다. 그는 나 못지않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무실엔 그와 나 둘뿐이었다. 슈테른은 그가 잘 아는 투하쳅스키와 야키르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내전 때 그들의 활약과 군대 건설에서 그들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슈테른은 어깨를 으쓱할 뿐 체포의 정당성에는 어떠한 의구심도 표현하지 않았다. 때문에 나도 더 이상의 의심은 하지 않았다. 카르타헤나로 돌아온 나는 발렌시아에서 읽은 전보에 대해 동료들에게 말해줬다. 당시 우리는 체포된 군 지휘관들이 끔찍한 폭정의 희생자일 것이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스페인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왔을 때 새로운 체포 소식을 들었다. 복귀 첫날 인민위원회로 가는 길에 고골레프스키 대로에서 K.A.메레츠코프와 마주쳤다. 우리는 스페인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다.

"어딜 그리 급히 가나?" 그가 날 멈춰세우며 말했다.

"상관에게 보고하러 가는 길입니다."

"올로프를 말하는 거라면 서두를 필요 없네. 그는 어제 체포되었어."

처음에 나는 메레츠코프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농담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 소식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서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블라디미르 미트로파노비치 올로프와 나눴던 대화,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떠올렸다. 그에게도 결점과 단점이 있었지만, 조국을 배신할 사람은 아니었다...

동지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체포들에 대해 알려줬다. 흑해에서 N. 모랄레프, A. 젤링, A. 루블렙스키가 체포되었다... 나는 그들이 함대에 최선을 다하는 정직한 소비에트 사령관이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그들의 체포에 대해선 의심하지 않았다.

"만약 실수가 있다면 그들이 바로잡겠지."

조심스럽게 한 친구에게 의문을 내비쳤을 때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그때 나는 이 마음 편한 생각을 받아들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블라디보스톡에서 내가 책임지고 있는 내 부하들이 체포되기 시작했고, 이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다 해결해 줄 것이라고 생각하며 마냥 안심할 수 없었다.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어떻게 지휘관에게 알리지도 않고 부하들을 체포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군사 위원회 위원인 Y.V. 볼코프에게 말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신뢰받지 못하고 있나?

그래도 한동안은 침묵했다. 그러나 1938년 2월에 새로운 체포 물결이 일어났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체포가 일어난 뒤에야 소식을 알았다. 어느 날 해안 방어 사령관 A.B. 엘리세예프가 전화를 걸어 루스키 섬의 포병 사단 사령관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아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는 사흘 동안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체포된 게 틀림없습니다." 엘리세예프가 말했다.

예측은 사실이었다. 체포를 확인한 나는 당 중앙위원회에 전보를 보냈다. 지방 당국이 사령관에게 무슨 일인지 알리지도 않고 지휘관을 체포하는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는 내용이었다. 답신은 오지 않았다.

대신 며칠 뒤 지역 NKVD 책임자인 디멘트만이 나를 찾아왔다.

그는 화를 내며 협박하는 어조로 “인민의 적을 체포할 때 항상 누군가에게 알릴 의무는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말한 것이 아니라 당 중앙위원회에 말한 것이며 그것은 나의 권리 일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고 대답했다.

디멘트만은 화를 내며 떠났지만 그날부터 체포는 중단되었다. 몇 주 동안 모든 것이 조용했다.

1938년 4월 초, 해군 인민위원* P.A. 스미르노프가 태평양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그와의 만남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함대의 요구 사항을 보고하고 새로운 상황에서 작업하기 위한 지침을 받아야 했다. 우리는 해군 조직 개편이 함대에 대한 큰 결정과 관련되어 있음을 이해했다. 국가가 해군력을 집중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였다.

(* 해군 인민위원: 해군 최고위 직책.)

해군 인민위원회 창설과 동시에 해군 중앙 군사 위원회도 창설되었다. 군사 위원회는 A.A. 즈다노프, P.A. 스미르노프, 나를 포함한 여러 함대 사령관으로 구성되었지만 나는 한 번도 위원회 회의에 초대받지 못했다. 당시 극동에서 모스크바까지 왕복하는 데 최소 20일이 걸렸기 때문이다. 한 번의 회의 때문에 그런 긴 시간을 오고 갈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나는 새로운 해군 인민위원의 방문이 아주 자연스럽고 시기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이미 북방함대와 발트함대를 방문했기 때문에 차례대로의 시찰인 줄 알았다. 하지만 상황은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스미르노프는 역에서 나를 보자마자 “나는 이곳의 질서를 바로잡고 인민의 적들로부터 함대를 청소하기 위해 왔네.”라고 선언했다.

스미르노프는 오랜 친구 사이인 볼코프의 집에 머물렀다. 그의 첫날 일정은 NKVD 책임자와의 대화로 꽉 차있었다. 나는 본부에서 스미로노프를 기다렸고, 그는 자정 무렵에서야 도착했다.

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주요 기지부터 시작해 함대의 상황이 어떤지 보고하기 시작했다. 작전 지도에 그려져있는 수많은 기호들이 이곳에 얼마나 많은 병력들이 있는지 보여주었다. 비행장, 포대, 군부대가 해안을 따라 수많은 섬들에 위치해 있었고 금각만과 인근 항구에는 함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그러나 북쪽으로 갈수록 병력이 줄어들었고 요새와 기지의 방어력도 약해졌다. 일부 해안 지역은 조약에 따라 일본 어부들의 영향 아래 있었고, 이것은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가 준비한 지도가 그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함대의 요구사항들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자 그는 나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 문제는 나중에 논의하지."

'좋아, 그가 돌아다니면서 직접 보게 해야지. 그럼 합의하기 더 쉬워질 거야.' 나는 생각했다.

"내일은 디멘트만과 함께 일할 예정이네." 대화가 끝날 때쯤 스미르노프가 이렇게 말하며 나를 초대했다.

다음 날 약속된 시간에 스미르노프, 볼코프, 디멘트만과 그의 해군 대리인 이바노프가 내 집무실에 모였다. 디멘트만은 나를 곁눈질하며 명백히 나를 무시했다. 그는 오직 인민위원하고만 대화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들의 운명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보았다. 디멘트만은 폴더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지휘관의 성, 이름, 부칭을 읽고 그들의 직책을 말했다. 그다음 그 사람에 관해 얼마나 많은 고발들이 있었는지 알렸다. 아무도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지목된 사람들의 업무 능력이나, 상관이 그들에게 어떤 평가를 내렸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디멘트만이 4개의 고발이 있었다고 말하면 스미르노프는 오래 생각하지 않고 서류에 '승인'이라고 적었다. 이는 그 사람을 체포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 당시 나는 NKVD의 자료를 의심할 충분한 근거가 없었다. 불리는 이름들은 익숙했지만 아직 그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나는 누군가의 체포를 결정하는 승인이 이렇게 쉽게 떨어진다는 사실에 놀랐고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한 이름이 귀를 강타했다.

"쿠즈네초프, 콘스탄틴 마트베예비치."

나와 성이 같은 그는 흑해에 있는 내 오랜 지인이었다. 나는 여기서 처음으로 무언가 실수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스미르노프가 그의 운명을 결정하려 펜을 들었을 때, 나는 서둘러 그에게 말했다.

"한 말씀 올리게 해주십시오, 인민위원 동지!" 모두가 내가 무슨 이상한 무단 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는 쿠즈네초프 대령을 수년 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그가 인민의 적일 리 없습니다!"

나는 그에 대해, 그의 봉사에 대해 더 많이 말하고 싶었지만 스미르노프가 말을 끊었다.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에 재확인하십시오."라고 말하면서 그는 서류를 디멘트만에게 돌려주었다.

디멘트만은 불만스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다음 이름을 읽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한동안 집무실에 남아 있었다. 볼코프가 나를 찾아 왔다. 그는 연륜 있는 현명한 동지의 어조로 나의 성급했던 행동에 대해 경고하는 것처럼 말했다.

"변호하는 것은 물론 고귀한 일이지만, 그만큼 책임이 따르는 일입니다..."

나는 그가 마저 말하지 않은 속뜻을 이해했다. '그대가 대가를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은 분명 경고였다.

다음날 저녁에도 체포 승인 절차가 계속되었고, 스미르노프와 디멘트만은 노골적으로 둘이서만 대화하며 모든 것을 자신들끼리 결정했다.

또 하루가 지났다. 스미르노프는 블라디보스톡의 함선들을 방문했고 저녁에 다시 내 집무실로 모였다.

디멘트만은 문턱을 넘자마자 "쿠즈네초프에 대한 고발이 두 개 더 있습니다."라고 발표했다. 그는 승리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스미르노프에게 서류를 건네주었다. 스미르노프는 즉시 승인하며 말했다.

"적은 아주 교묘하게 위장하는 법이지. 그것을 알아내기란 결코 쉽지 않아. 그만큼 우리는 부주의해서는 안 되네!"

그것은 마치 나를 향한 질책처럼 들렸다. 솔직히 말해서 많이 당황스러웠다. 나는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쿠즈네초프의 유죄가 결국 권위 있는 기관에 의해 입증되었으니 말이다!

회의가 끝난 후 볼코프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내게 애정 어린 말과 함께 격려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며 앞으로 함부로 말하지 말고 더 조심스럽고 영리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결국 K.M. 쿠즈네초프를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체포되었다. 그것은 상당한 수였다. 이 '기소장'을 검토하는데 3일 저녁이 걸린 것은 이유가 있었다. 이 체포 건으로 인해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바로 옆에서 함께 복무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반역자가 될 수 있는지, 어째서 그들의 변절을 알아채지 못했는지였다. 국가 보안 기관이 잘못 행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떠올리지 못했다. 더욱이 '증거를 얻는 어떤 특별한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스미르노프는 바다에서 이틀을 보낸 뒤 올고-블라디미르 지역을 방문했다. 그는 여전히 함대 운영 관련으로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가 특별한 해양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서 어려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인민의 적'과 친분이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스미르노프의 방문이 끝나가고 있었다. 불행히도 그는 우리가 준비한 사항들을 바로 해결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모스크바로 자료들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나는 서류를 준비했고 스미르노프가 그것을 가져갔지만 그가 해임될 때까지 우리가 제시한 요청사항들 중 단 하나도 검토되지 않았다. 스미르노프는 단 한 가지에 대해서만 결정을 내리고 떠났는데, 그마저도 우리에게 유리한 결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항공 부대에 관한 것이었는데, 특수 붉은 깃발 극동 부대 사령부가 우리의 항공부대를 자신들에게 넘겨달라고 요청한 건이였다. 나는 당연히 강력하게 반대하며 폭격기들이 함대와 잘 협력하고 있으며 그들을 넘겨주면 우리는 많은 전투력을 잃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미르노프는 항공대가 육군에 속해있어도 함대와 잘 협력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뇨, 그것은 이미 해군 항공대가 아닙니다."

나는 스페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항공기와 함선이 단일 지휘하에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며 반박했다. 그러나 내 말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결국 명령이 내려졌고 우리는 그것을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스미르노프는 블류헤르 원수의 부탁으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고백했다. 처음부터 인민위원을 설득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었다.

스미르노프가 떠나는 날 우리는 그의 마지막 말을 듣기 위해 다시 모였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디멘트만이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렸다.

"여기 쿠즈네초프의 자백이 있습니다."라고 그는 스미르노프에게 종이를 건네며 말했다.

스미르노프는 종이를 빠르게 훑어보고 나에게 넘겼다. 거기엔 내 오랜 지인 콘스탄틴 쿠즈네초프의 글씨체로 쓰인 단 한 문장이 적혀있었다.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내가 인민의 적임을 인정합니다.]

"필적을 알아보겠나?"

"예, 그의 필체입니다..."

"그대는 아직 정치적으로 성숙하지 않군." 스미르노프가 투덜대며 말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디멘트만은 그의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볼코프만이 어떻게든 대화를 부드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어린 함대사령관께서 좋은 교훈을 얻었으니 앞으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겠지요..."

쿠즈네초프의 자백에 발아래 땅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제 그의 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이후로 직무상 발언해야 할 때는 공식적인 결과를 따르며 그 당시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체포된 사람들을 인민의 적이라고 불렀다. 내면의 무언가가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몇 달 후 스미르노프가 모스크바에서 체포되었다.* 그를 대신할 해군 인민위원으로 N.N. 프리놉스키가 임명되었다. 그는 해군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예조프의 사람이었다.

(*이후 스미르노프는 1939년 2월 22일 총살당한다.)

스미르노프의 체포 소식은 볼코프가 전해주었다. 그는 불편하고 혼란스러워 보였다. 볼코프는 최근까지 스미르노프와의 오랜 친분과 우정을 과시하고 다녔다. 그에게 이것에 대해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한 조종사 V.K. 코키나키가 블라디보스톡으로 날아왔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극동까지 기록적인 직항 비행을 완수했다. 코키나키는 내 손님이었고, 나는 그와 빠르게 친해졌다. 코키나키는 특유의 호기심으로 함선들에 관심을 보였고, 나와 함께 함대 훈련에 참여했다. 그가 돌아갈 때가 돼서 우리는 작별 저녁 만찬을 준비했다. 슈테른과 P.V. 리차코프도 블라디보스톡에 찾아왔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볼코프를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그의 집무실과 집에 전화를 걸었고,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그가 어디론가 급히 떠났고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오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그 없이 식사를 시작해야 했다.

저녁 식사가 한창일 때 볼코프의 비서가 들어와서 조심스럽게 나를 밖으로 따로 불러냈다.

"볼코프께서 체포되셨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지휘관들의 체포를 승인하던 사람들이 똑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모스크바에서 일하면서 나는 스미르노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그의 진술서의 짧은 발췌문만 받을 수 있었다. 스미르노프는 자신이 고의로 해군 장교를 구타했다고 자백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말할 수 없다. 이것을 끝으로 그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나는 1954년에서야 볼코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시베리아 어딘가의 수용소에서 10년 동안 복역했다. 그는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곧바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대화를 나누고 나는 볼코프에게 인사 담당 부관에게 가서 필요한 서류를 처리하라고 말했다.

"그 분의 사무실 번호는 몇 번입니까?" 전 군사 위원회 위원이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감옥 말투는 수년에 걸쳐 그에게 뿌리를 내렸다.

콘스탄틴 마트베예비치 쿠즈네초프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 1939년 봄, 나는 즈다노프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했다. 우리는 내 전 집무실에 모여 앉았다. 내가 해군 인민위원으로 임명되고 I.S.유마셰프가 태평양함대를 지휘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 집무실은 이제 유마셰프의 것이었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부관이 들어와 보고했다.

"쿠즈네초프 대령이 동지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다."

"어떤 쿠즈네초프? 잠수함?"

"예, 그분입니다."

나는 대화를 중단하고 즈다노프의 의견을 묻지도 않은 채 서둘러 말했다.

"당장 들여보내게!"

그렇게 콘스탄틴 쿠즈네초프가 집무실에 들어왔다. 1년 동안 많이 변한 그는 창백하고 초췌해 보였다. 나는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었다.

"대령 쿠즈네초프가 복권되어 복귀했음을 보고드립니다."라고 쿠즈네초프가 보고했다.

즈다노프는 당황한 표정으로 콘스탄틴과 나를 번갈아 보았다. 그의 표정은 '이게 다 무슨 일인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대는 그대가 인민의 적이라는 진술서에 서명했나?" 내가 쿠즈네초프에게 물었다.

"예,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입을 벌려 입안을 보여주었다. 치아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즈다노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머릿속에서 체포와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 실제로 많은 불합리한 일들이 있었다지." 즈다노프는 건조하게 대답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났다. 20차, 22차 당대회 이후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우리는 스탈린 숭배 시대 때의 범죄를 밝혀냈고, 그것에 대해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그 시절 우리가 어떻게 탄압을 받아들였는지 계속해서 떠올린다. 가장 쉬운 것은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고위 당국을 믿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그랬으나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이 신뢰하는 기관에 대한 믿음, 스탈린에 대한 믿음까지 점차 사라져갔다. 탄압은 점점 나에게 더 가까운 사람들, 내가 잘 알고 있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떨어졌다. G.M. 슈테른, Y.V. 스무쉬케비치, P.V. 리차코프, I.I. 프로스쿠로프.... 어떻게 그들이 인민의 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었을까?

스탈린의 사무실에서 스탈린이 갑자기 이렇게 말했었던 게 기억난다.

"슈테른이 인민의 적으로 밝혀졌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시 깨달았다. 그곳에는 슈테른을 잘 알고 그와 친구였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슈테른의 유죄를 믿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누구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당시 상황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사람이고, 내일은 내가 될 수도 있겠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N.A. 보즈네센스키만이 슈테른을 향해 한마디 했었다. "개자식 같으니!"

훗날 보즈네센스키가 슈테른과 같은 운명에 처해졌을 때 나는 몇 번이나 이날의 일을 떠올렸다.

 

 


원문

http://militera.lib.ru/memo/russian/kuznetsov-1/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