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뜨거운 파도
바다는 태양을 제외하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이다.
바다는 끝없고 자유롭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그 앞에서 사소하고 찰나일 뿐이다.
존 골즈워디
1장
블라디보스톡의 아침은 따뜻하고 바람조차 불지 않았다. 비가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가을의 아침이 아니라, 세바스토폴 흑해의 무더운 여름인 것처럼 태양이 지면에 아낌없이 빛을 내리쬐고 있었다. 이렇게 따가운 햇살과 함께 시작한 아침이 거짓말같이 시간이 지나자 곧 나무를 뿌리뽑을 정도의 강풍이 불기 시작했고 바다에서는 폭풍이 일었다. 변덕스럽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극동의 날씨는 하루 만에 어떻게 변할지 예측조차 힘들었다. 함대 본부에 있던 태평양 함대 사령관 쿠즈네초프 대령은 심상치 않은 날씨에 불안한 마음이 들어 작전 장교를 사무실로 호출했다.
"바다의 상황은 어떻지?" 장교가 도착하자마자 쿠즈네초프는 빠르게 물었다.
"보퍼트 계급 11까지 올라갔습니다, 사령관 동지."
"함선들은 잘 정박해 있나?"
"함대에 폭풍주의보가 발령되어 상시 순찰 중인 함선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두에 정박 중입니다."
"그게 끝인가?" 쿠즈네초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죄송합니다, 사령관 동지. 오늘 오후 신형 구축함 '례쉬텔니'를 견인하기 위해 함선 하나가 출항했습니다." 작전 장교가 빠르게 말을 정정했다.
"지휘관 고르시코프 소령에게 소식은 없나?"
"아직 없습니다."
그거 이상하군. 왜 아무 말이 없지? 느낌이 좋지 않은데. 무의식적으로 쿠즈네초프는 생각했다.
"고르시코프와 통신해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도록."
"예, 사령관 동지!"
쿠즈네초프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창가에 다가갔다. 갑자기 불안한 생각이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례쉬텔니'는 지금 정말 괜찮을까?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는 지휘관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고르시코프로부터 구축함을 함대 본진으로 견인하는 것을 승인해달라는 요청 전화를 받았었다.
"사령관 동지, 여름의 해변처럼 날씨가 좋습니다." 고르시코프의 낮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렸다. "저녁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쿠즈네초프는 흔쾌히 허가 명령을 내렸지만 바다에 폭풍이 불자 마음이 영 불안해졌다. 조금이라도 진정하기 위해 테이블에 놓여있던 '카즈벡' 담배 하나를 꺼내 불을 붙였을 때였다.
"사령관 동지, 긴급 상황입니다!"
소리가 들린 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리자 작전 장교가 달려온 듯 정돈되지 않은 모습으로 출입구에 서있었다. 쿠즈네초프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긴급 상황?"
"구축함 '례쉬텔니'가 파도에 휩쓸려 졸로토이 곶 해변에서 난파됐다고 합니다." 작전 장교는 한숨을 내쉬면서 보고했다.
'젠장!' 쿠즈네초프는 거의 소리 내 외칠 뻔했다. '우리 지도자께서 칭찬하실 만한 일은 아니군….'
"누가 보고했지?"
"고르시코프 함장입니다…."
난파 사고에 대한 세부 사항은 이러했다. 저녁 무렵 바다가 격렬해지면서 거칠게 일렁이는 파도가 함선을 이리저리 휘둘러 견인 줄이 끊어졌고 다시 줄을 연결하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함선에는 선원들 외에도 조선공들이 함께 타고 있었는데 그들은 구축함을 구하기 위해 용맹하게 분투했지만 상황을 통제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후였다. 파도가 함선을 해안에 내동댕이쳐 결국 구축함은 난파당했고, 함선과 선원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 고르시코프 함장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결국 한 명의 조선공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졌다.
쿠즈네초프에게는 그의 군 복무 중 처음으로 함선을 잃은 사건이었고 이는 감정을 극도로 요동치게 만들었지만 그는 모든 걸 절제하고 차분하게 고르시코프의 말을 경청했다.
"제 명예를 걸고 맹세합니다, 사령관 동지.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고르시코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죽은 조선공은 어떻게 되었지?"
"부관에게 그를 가족에게 인도하고 장례식에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쿠즈네초프는 다른 여러 가지 사항들을 명확히 확인하고 말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에서 자네의 잘못은 보이지 않는군. 상부엔 잘 보고하겠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정말 걱정됩니다." 고르시코프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 갑자기…."
"사건의 모든 상황을 요약한 보고서를 작성해 내게 보내주게." 쿠즈네초프는 생각에 잠겨 손가락으로 볼을 문지르다 말했다. "추가로, 항해사에게 함대의 경로를 지도에 표시하고 구축함이 난파된 곳을 표시하도록 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쿠즈네초프는 모스크바에 사건 보고를 암호 전보로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해군 인민위원 프리놉스키로부터 빠르게 답신이 도착했다. 총성처럼 짧고 간결한 내용이었다. [당장 모스크바로 올 것.] 함대 군사위원회 위원인 볼코프는 쿠즈네초프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겼나?" 볼코프가 묻자 쿠즈네초프가 말없이 그에게 답신을 건넸다.
"안 좋은 일이야,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자네는 군법회의에 회부될 수도 있어. 고르시코프를 보직에서 해임해야 해. 이건 다 그의 책임 아닌가."
"야코프 바실리예비치, 고르시코프는 이 사건에서 결백하네. 그는 최선을 다했어. 폭풍 같은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고르시코프를 동정하는군. 아무도 자네를 동정하지 않을 텐데도." 볼코프는 답답해서 그에게 거칠게 말했다. "자네는 재능 있고, 똑똑하고, 바다를 사랑하지. 윗분들이 싫어하기 딱이야. 이미 우리 형제들이 많이 체포되었지 않나... 나는 걱정되네."
"두고 보도록 하자고." 쿠즈네초프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그의 마음은 볼코프의 말에 동의하고 있었다. '맞아. 가혹한 우리 지도자께 자비를 기대할 수는 없겠지.'
(그러나 후에 체포되는 사람은 볼코프였다. 그는 사보타주 혐의로 기소되어 시베리아 어딘가의 수용소에서 10년을 보냈고 1954년에서야 쿠즈네초프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모스크바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쿠즈네초프를 찾아갔고 쿠즈네초프는 그를 돕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했다. )
모스크바로의 여행은 쿠즈네초프를 불안하게 했다. 정말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기차에 타기 전 그는 고향에 살고 있는 어머니 안나 이바노브나에게 편지를 썼다. (아버지 게라심 표도로비치 쿠즈네초프는 니콜라이가 11살이었던 1915년 여름에 사망했다.) [사랑하는 어머니, 오랫동안 편지를 쓰지 못해서 미안해요. 너무 중요하고 할 일이 많았어요. 잘 지내고 있죠? 몸은 좀 어떠세요? 항상 몸조심하세요. 난 괜찮으니 내 걱정은 마시고요. 사랑하고 보고 싶어요. 곧 볼 수 있기를. 엄마의 아들 콜카.]
가방을 들고 서둘러 역으로 향하던 쿠즈네초프는 발걸음을 돌려 오랜 친구인 전연방 공산당 연해주 지역위원회 서기 페고프에게 들렀다.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부탁하네." 쿠즈네초프가 슬퍼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이 편지를 내 어머니께 전해주게. 내가 지금 어디로 불려가고 있는지 잘 알지 않나…."
"안 좋은 생각 말게,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페고프는 그를 진정시켰다. "함선이 파괴된 것은 자네 잘못이 아니야. 그리고 또 한 가지. 모든 것엔 절차가 있기 마련이네. 사람을 처벌하기 전엔 먼저 조사를 진행하고…"
"37년 11월에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자 내 상사였던 키레예프는 모스크바로 불려가 체포되었고 그 이후 돌아오지 않았네. 키레예프 이전에도 빅토로프와 오쿠네프가 모스크바로 간 다음 돌아오지 못했지. 이것이 자네가 말하려는 절차인가?!"
페고프는 쿠즈네초프의 거친 말에 당황하여 순간 얼굴이 붉어졌지만 곧 표정을 풀고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자네가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해. 우리는 다시 함께 낚시를 가고, 숲에서 사냥도 할 수 있을 거야."
"부디 그랬으면." 쿠즈네초프가 끝으로 말했다.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에서 쿠즈네초프는 일주일 내내 마치 정신이 어딘가로 떠나려는 듯한 이질감을 느꼈다. 기차의 규칙적인 바퀴 소리와 함께 자신이 어떻게 처리될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모스크바에 도착해 마침내 해군 인민위원 프리놉스키 앞에 섰을 때도 그 기묘한 기분은 사리지지 않았다. 프리놉스키는 키가 크고 날씬한 남자였고 그의 회색빛 눈은 싸늘하게 빛나고 있었다. 프리놉스키는 이전에 국경 보안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해군과는 관련이 전혀 없던 인물이었기에 그의 해군 인민위원 임명은 쿠즈네초프를 놀라게 했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프리놉스키는 마치 국경에서 사람들을 대하듯 단호하게 말했다.
"어떻게 새 함선을 난파시킬 수 있지?" 그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악하게 눈을 반짝였다. "보고해 보게. 변명은 질색이니 하지 말고."
쿠즈네초프는 거짓 없이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했다.
"그대는 당에 그대로 대답해야 할 거야." 쿠즈네초프의 보고를 다 들은 프리놉스키가 경고했다. "내일 아침 10시에 해군 군사위원회 회의가 있으니 늦지 말도록."
쿠즈네초프는 프리놉스키를 떠나면서 씁쓸하게 생각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어디서 머물고 있는지 무엇이 걱정되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는군.
해군 군사위원회 회의에서는 대규모 함대의 전략적 발전 문제, 새로운 함선 건조에 대한 논의가 다뤄졌다. 쿠즈네초프는 이 모든 사항들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가 연단에 올라 발언 기회를 얻었을 때 그는 해군을 위한 인력 교육, 새로운 해군 기지 건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상업 항구를 블라디보스톡에서 나홋카로 옮기고 도시를 폐쇄된 군사 기지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금의 블라디보스톡은 대로변과도 같습니다. 누구나 부두로 와서 우리 함선들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습니다. 구경꾼 중에는 외국인도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일본인들이 눈에 띄더군요.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서는 안됩니다!" 쿠즈네초프는 큰 소리로 연설했다.
그날 저녁 프리놉스키가 차를 마시면서 쿠즈네초프에게 말했다. "그대는 매우 발전된 생각을 가지고 있더군. 우리는 그대가 말한 것을 고려해볼 거야."
"고려할 때가 되었죠." 쿠즈네초프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크렘린궁 안드레예프스키 홀에서 열린 마지막 회의에서 쿠즈네초프는 스탈린 외에도 정치국 위원인 몰로토프, 보로실로프, 즈다노프, 미코얀, 칼리닌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미소와 얘기를 들어보니 다행히 모두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함대 사령관 프리놉스키, 유마셰프, 레브첸코, 드로즈드가 차례로 연설했다….
드디어 쿠즈네초프의 순서가 왔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 앞으로 걸어갔다. "동지들이여!" 그의 목소리가 조용한 홀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저는 거의 1년 동안 스페인 공화국 동지들과 함께 전장에서 싸웠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프랑코 반군에 대항하면서 해군 활용에 대한 새롭고 귀중한 것들을 통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소련에서 오는 물자를 운반하는 수송선을 호위하고 적 함선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말하고 싶은 건 무엇이냐?" 쿠즈네초프는 열렬히 말을 이어갔다. "스페인 내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함대의 높은 전투 준비 태세, 함선과 군사 기지의 방공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쿠즈네초프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것과 태평양 함대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구축함 '례쉬텔니'의 손실에 대해 언급했을 때 스탈린이 갑자기 말을 끊었다.
"그 배를 구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했나?"
위대한 지도자의 목소리는 건조하고 약간 삐거덕거렸다. 쿠즈네초프는 당황하지 않고 부하들이 구축함을 구하기 위해 맹렬히 싸웠지만 격렬한 폭풍에 결국 패배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쿠즈네초프는 책임자였던 고르시코프 소령에게는 죄가 없다고 특히나 강조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배가 침몰했는데 잭임질 사람이 없다고?" 몰로토프가 쿠즈네초프를 바라보며 비웃었다.
"책임질 사람은 있습니다,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쿠즈네초프가 조용히 말했다. "함대 사령관인 저입니다. 저는 제 함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 그대가 처벌을 받아야겠군." 몰로토프가 무례하게 비꼬았다.
그리고 스탈린은 미소 지었다.
"우리는 누구도 재판에 회부하지 않을 걸세." 스탈린이 근엄하게 말했다. "그러나 쿠즈네초프 동지. 다음은 없을 게야."
쿠즈네초프는 스탈린의 말을 듣고 드디어 안심할 수 있었다.
한 달 후 쿠즈네초프는 제18회 당대회 대표로 다시 모스크바에 와야 했다. 대기시간에 쿠즈네초프는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슈테른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스탈린이 다가와 쿠즈네초프에게 한 장의 종이를 건내주었다. 종이의 정체는 프리놉스키가 올린 문서였고 해군에 무지한 자신을 해군 인민위원에서 직위 해체해 줄 것을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이제 곧 당대회 연설이군."
"준비되었습니다." 스탈린의 말에 쿠즈네초프는 문서를 돌려주면서 차분하게 대답했다.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연단으로 나아가야 했다'라고 쿠즈네초프는 훗날 회고했다. 이날 쿠즈네초프는 일본군의 공격적인 계획과 국경에서의 도발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다음 복무 중인 태평양 함대에 대해 얘기하며 해군 장병들이 조국에 대한 의무를 끝까지 완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대표단들에게 거듭 확신을 심어주었다.
모든 것을 순조롭게 끝내고 당대회를 마친 쿠즈네초프는 아침에 블라디보스톡으로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벽 1시, 크렘린에서 갑작스럽게 차 한 대가 그를 찾아왔다.
"스탈린 동지께서 급히 찾고 계십니다!" 키가 크고 어두운 갈색 눈을 가진 장교가 쿠즈네초프에게 알렸다.
쿠즈네초프는 스탈린이 왜 이렇게 갑자기 자신을 찾는 건지 당황하며 뒷좌석에 앉았다. 이상하게도 크렘린이 아닌 극장으로 외출하는 것처럼 마음은 차분했다.
까마귀처럼 검은 차가 밤의 도시를 가로질러 보로비츠키 문을 지나 크렘린으로 들어갔다.
쿠즈네초프가 사무실의 거대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곧장 스탈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앉게나." 스탈린이 의자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대회에서 제대로 보지 못했으니 이리 가까이 와보게."
"지금은 아주 얌전해 보이는군요." 몰로토프가 스탈린에게 서류를 건네주며 웃었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금세 기어오를 해군 사령관이겠죠."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는 또 저러는군. 나한테 뭐가 그리 불만인거지?' 쿠즈네초프는 속상해하며 생각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 하나 제대로 못하는 지휘관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즈다노프가 손끝으로 콧수염을 매만지며 끼어들었다. "우리 해군에는 여태 그런 사람들밖에 없었고 그들은 그저 그런 사령관이 되었죠. 그런 쓸모없는 지휘관들은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불발탄 같지 않습니까. 폭발했다는데 폭발하지 않았으니."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자네, 오늘 상당히 철학적이군." 스탈린이 유쾌해하며 말했다. "자, 우리 손님이 곤란해하고 있지 않나." 그러고 그는 쿠즈네초프의 반응을 따로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태평양에서 복무하는 것은 어떤가?"
"매우 좋습니다!" 쿠즈네초프가 활기차게 대답했다. "저는 흑해 함대에서 오랫동안 복무하며 한때 세바스토폴에서 살았지만 블라디보스톡은 그 규모가 다릅니다. 블라디보스톡엔 수많은 해안, 만, 섬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만들을 파트로클로스, 율리시스, 디오메데스라고 부르고 있는데 마치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곳까지 왔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지 않습니까? 루스키 섬은 또 어떻고요! 그곳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직접 보셔야 합니다…."
쿠즈네초프는 소련 정치국 위원들 사이에서 자신의 생각에 대해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했고, 그의 말들은 스탈린의 밝은 감정을 일깨우는 것처럼 보였다. 스탈린은 미소를 지으면서 경청했고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려다 이내 옆으로 치우기까지 했다. 쿠즈네초프는 스탈린과 가까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름진 얼굴과 희끗한 콧수염, 희미한 눈웃음까지 볼 수 있었다.
"루스키 섬이라... 금각만이나 소베츠카야 가반만 같은 곳도 아름답지. 기후도 얄타와 비슷하고 말이야. 블라디보스톡은 바투미의 위도와 비슷하니. 언젠가 극동에 가보려고 했는데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가 막아섰지 뭔가. 나 없이 여기서 뭘 할 수 있겠냐고 말이야. 그래, 우리는 많은 의무가 있지.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스탈린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물음을 던졌다.
"스탈린 동지, 저는 아직 당신에게 조언을 나눌 만큼 나이가 많지 않습니다." 쿠즈네초프가 당황스러워하며 대답했다.
"나이가 많지 않다고?" 스탈린이 웃었다. "그래서 누가 블라디보스톡에서 나홋카로 상업 항구를 옮기자고 제안했지?"
"해군 문제는 제 일이었으니까요."
"그래그래, 해군 문제." 스탈린이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건 아주 현명한 제안이었네. 즈다노프 동지를 블라디보스톡에 보내 한 달 동안 그곳에 머물게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결정할 생각이야. 그래서, 즈다노프가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만 어떤가?" 스탈린의 눈이 능청스럽게 빛났다. 제안처럼 들리지만 명령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당연히 그렇게 하겠습니다." 쿠즈네초프가 힘차게 대답했다.
이후에도 둘은 하산 호 전투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중 문득 스탈린이 물었다.
"모스크바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어떨 거 같나?"
쿠즈네초프는 잠깐 혼란스러워 하다가 즉시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저는 군인이고 중앙에서 일해본 경험은 없지만 시켜만 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임하겠습니다."
"잘 알겠네." 스탈린이 파이프 담배를 피워댔다. "더 질문 있나? 없으면 이만 가봐도 좋네."
일출이 수도를 밝게 비추는 아침 쿠즈네초프는 인민위원회 건물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프리놉스키의 사임 이후 해군 인민위원이 공백인 상황에 그가 해군 부인민위원으로 임명되었다는 발표를 들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이 너무 예기치 않게 일어났고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인지 믿을 수 없었다. 페고프는 쿠즈네초프가 무언가에 대해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모든 일들을 들은 뒤 쿠즈네초프를 진심으로 축하했다.
"걱정했는데 잘 해결돼서 정말 다행이네... 지도자께서 인정해 주신 것 아닌가. 경력에 매우 중요한 일이겠지."
"나는 내 커리어에 대해 그리 신경 쓰지 않네,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중앙에서 어떻게 일을 시작할 것인지 그들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할 것인지가 걱정이야. 알잖나. 나는 불만이 생겼을 때 스탈린에게 직접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거네."
"자네 아직 싱글인가?" 페고프가 물었다. "친구여, 결혼하면 직장을 한결 더 편하게 다닐 수 있을 거야."
쿠즈네초프는 그 말을 듣고 웃기만 했다.
"뭔가?" 페고프가 쿠즈네초프의 이상한 반응에 점점 불쾌해질 무렵이었다.
"난 이미 결혼했네, 니콜라이 미하일로비치. 당대회 당일 3월 13일에 말이야!"
"뭐? 누구랑?" 페고프가 냉큼 쿠즈네초프의 옆에 앉았다. "어서 말해보게, 나는 자네의 친구 아닌가..."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야!"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가 자랑스럽게 외쳤다. "모스크바 여자, 베라 니콜라예브나. 원래 성은 셰토히나 였지만 이제는 쿠즈네초바네."
"어디서 그녀를 만난건가?"
"해군본부 설계국에서. 지금은 호텔 '모스크바'에서 같이 지내고 있네. 오늘 밤에 와서 결혼 기념 코냑 한잔하자고. 내가 선택한 여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와서 보게나."
그때 크렘린에서의 전화가 울렸다. 쿠즈네초프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즈다노프 일세." 저음의 목소리였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스탈린 동지께서 자네와 함께 블라디보스톡과 하바롭스크로 되도록 빨리 떠나라고 말씀하셨네. 나홋카로 상업 항구를 옮기자는 자네의 제안 외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야."
바쁜 일정에 처리해야 할 서류도 많다고 쿠즈네초프가 항론하자 즈다노프가 말을 끊었다.
"서류는 기다려야 하지 않나. 그리고 감히 스탈린 동지께 이렇게 말할 생각 말게나. 이해하시지 않으실 테니."
"언제 떠납니까?"
"내일모레, 3월 28일."
즈다노프 중앙위원회에서 해군을 전담하게 됐고 함선과 해군기지 건설 등이 모두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 쿠즈네초프는 함대의 이익을 위해 그와 붙어 다니기로 결심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일주일 동안 기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쿠즈네초프는 즈다노프에게 함선과 사람들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 함대의 문제점과 전투 준비 태세를 높이기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 같은 많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즈다노프는 자신이 바다보다 강이 친근한 사람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바다에 항상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적백내전 당시 카마강과 페름에서 싸웠고 고리키에서 지역 당위원회 서기로 수년 동안 일했다.
"무엇을 걱정하는 건가,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스탈린의 말씀을 못 들었나? 우리는 지금 크고 강력한 함대가 필요하고, 어떤 희생을 치러서라도 그 임무를 완수할 거네."
이 출장은 쿠즈네초프에게 꽤나 성공적이었다. 그는 즈다노프에게 잠수함을 중점에 두고 빠르게 함선들의 건조를 시작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설득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다음 날 중앙위원회에서 곧바로 출장 결과가 논의되었다.
쿠즈네초프도 크렘린궁에 초대되었고 회의에는 정치국의 모든 구성원이 참석했다. 즈다노프는 극동의 문제를 간략하고 설득력 있게 설명했고 연해주 지역과 태평양 함대의 문제점에 대해 거론했다. 결국 쿠즈네초프의 말대로 즉시 상업 항구를 나홋카로 이전하는 것이 결정됐다.
"이 모든 문제를 고찰하는 데에 쿠즈네초프 동지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라고 즈다노프가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함대를 잘 알고 있고 해군을 위해 살고 있더군요."
쿠즈네초프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쑥스러워졌다. 즈다노프가 자리에 앉자 스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치국 의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동지들, 이제 해군 문제를 처리하는 게 어떤가?"
"좋습니다,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몰로토프가 대답했다.
"더 이상 미룰 필요는 없죠." 즈다노프가 덧붙였다.
"좋아." 스탈린이 쿠즈네초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만 가보게, 쿠즈네초프 동지."
쿠즈네초프는 그들이 처리해야 할 '해군 문제'가 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나갔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 쿠즈네초프가 근무지로 돌아왔을 때 그의 책상 위에 낯선 빨간 봉투가 놓여있었다. 봉투에 적혀있는 글을 천천히 읽어갈수록 쿠즈네초프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은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쿠즈네초프를 소련 해군 인민위원으로 임명한다는 '소련 최고회의 상무회'의 법령이었다. 그의 나이 겨우 34세의 일이었다. 쿠즈네초프는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크렘린에서 스탈린이 부르는 것에 즉각 반응하지도 못했다.
"만족하나?"
쿠즈네초프가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스탈린이 말했다.
"솔직히 자네에게 그런 높은 직책을 맡겨도 되는지 의구심도 들었네. 갈레르나 이사코프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몰로토프, 특히 즈다노프가 자네를 강력하게 추천했네. 아마 그들이 옳을 테지. 세르고 오르조니키제와 함께 자네가 지휘하던 순양함 '체르보나 우크라이나'를 방문했을 때가 기억나는군. 그날 해군들은 인상 깊었고 부하들이 자네를 얼마나 좋아하고 따르는지 볼 수 있었네. 상관의 명령에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부하들을 찾는 게 어디 쉬운가. 그래서, 임명은 만족스럽나?"
"실패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스탈린의 말에 쿠즈네초프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실패하지 않도록 노력하게." 스탈린이 처음 들어보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입에 잠시 미소가 번졌다 사라졌다. "책임 있는 위치에서 의무를 다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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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르시코프와 '례쉬텔니' 사고
Решительный (эсминец, 1937) — Википедия
Материал из Википедии — свободной энциклопедии «Решительный» — советский эскадренный миноносец проекта 7. По планам Командования ВМФ СС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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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1월, 세르게이 고르시코프는 구축함 '례쉬텔니'를 블라디보스톡까지 견인하는 임무를 맡았다. 불행하게도 견인 도중 기상악화로 폭풍에 휩쓸려 바위에 부딪힌 구축함은 난파당하고 말았고 당시 태평양 함대 사령관이던 니콜라이 쿠즈네초프의 적극적인 변호로 고르시코프는 엄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에도 불구하고 고르시코프는 훗날 쿠즈네초프의 정치적 몰락에 가담하며 해군에서 쫓겨난 쿠즈네초프의 모든 활동과 발언들을 묵살시켰다. 이에 대해 쿠즈네초프는 자신의 전후 회고록인 «Крутые повороты»에서 고르시코프를 다음과 같이 평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고르시코프가 자신의 안위와 경력을 위해 주코프와 함께 해군 전체와 나를 비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는 사실에 매우 놀라고 화가 났다. 나는 영원히 흐루쇼프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해군 전체를 비방하는 것을 서슴지 않는 고르시코프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극동에서 구축함 '례쉬텔니'가 파괴된 건으로 열릴 뻔한 재판에서 자신을 구해준 전 상관을 비방하려면 도덕적 자질이 상당히 낮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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