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쿠즈네초프의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전환점이었다. 카르타헤나 근처의 전선과 해상에서 쿠즈네초프는 여러 번 위험을 무릅쓰고 전투 경험을 쌓았고, 그 경험은 귀국한 후 히틀러의 침략에 대비할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쿠즈네초프는 해군 수송 임무를 담당하며 탱크, 비행기, 총, 탄약 등을 카르타헤나로 옮기는 수송선들의 안전을 책임졌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함선들이 소련 함선들을 공격하려고 했지만 번번히 실패했다.
쿠즈네초프가 바코브카에 있는 부됸니의 다챠에 방문했을 때 부됸니 원수가 물었다.
"니콜라이 자네도 직접 해상 전투에 참여한 건가?"
"예, 세묜 미하일로비치." 그의 눈이 자랑스럽게 반짝였다. "37년 4월에 공화당 편대가 적 함선을 사냥하기 위해 출항했습니다. 저는 스페인 함대의 부이스 사령관과 함께 구축함 '안테케라'에 승선해 있었습니다. 전함 '하이메 1세'와 순양함, 구축함으로 구성된 함대가 말라가-모트릴 지역의 해안에 도착하여 프랑코주의자들의 진지를 폭격했고 해안에서 멀어지기도 전에 어뢰정과 반군 비행기가 저희에게 반격했습니다. 구축함 근처에서 폭탄이 터졌는데 파편 조각이 함교에 서 있던 제 어깨에 걸쳐진 재킷을 찢고 탐조등을 깨뜨렸습니다. 아마 조금만 더 옆이었다면 제 머리에 맞았을 겁니다."
"자네 아주 무시무시한 남자군!"
부됸니가 잔을 따르자 쿠즈네초프가 기겁하며 말렸다.
"더는 못 마십니다! 이미 취한 것 같..."
"그럼 피클이나 먹게! 자, 그대의 더 많은 성공을 기원하며!" 부됸니 원수가 잔을 높이 들었고 결국 둘은 뺨을 맞대고 술을 마셨다.
쿠즈네초프는 숨을 고르고 말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중요하게 봐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카르타헤나에 도착하고 잠수함 함대 사령관 베르디아와 빠르게 친해졌습니다. 그는 C-5 잠수함을 지휘하고 있었고 같이 반군들의 전함 '에스파냐'를 파괴할 계획을 세우자고 부탁해서 밤늦게까지 그와 함께 작전 계획을 작성했습니다. 계획대로 베르디아가 은밀히 전함에게 어뢰를 발사했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아십니까? 어뢰는 명중했지만 전함은 폭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정말입니다, 세묜 미하일로비치. 계획은 완벽했고 문제없이 실행됐습니다. 스페인의 동지들 또한 매우 용감하고 훌륭했지만 급하게 마련한 함 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진겁니다."
"스페인에 얼마나 있었나?"
"거의 일 년입니다. 전투에 너무 몰두하느라 떠날 생각도 못 하고 있었는데 8월에 모스크바로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부이스 사령관이 비행장으로 저를 배웅해 주면서 다시 만나자고 했지만 클림 보로실로프께선 다시 절 보낼 생각이 없어 보였습니다. 마치 제 자신의 일부를 스페인에 남겨두고 온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럼 지금은 어디서 머물고 있나?"
"호텔 '모스크바'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 상부에 가봐야 합니다."
"그럼 오늘 여기서 하룻밤 자고 가는 게 어떤가? 아침에 그쪽으로 태워다 주겠네." 부됸니가 오른쪽 콧수염을 비틀면서 말했다.
"마음은 감사합니다만 이만 가봐야 합니다, 세묜 미하일로비치. 국방인민위원의 부관인 흐멜니츠키가 전화 주기로 했었습니다."
"좋아, 좋아, 알겠네. 나중에 어디로 배속되는지나 말해주게. 보로실로프한테 얘기 좀 잘 해줄까? 클림은 내 오랜 친구일세!"
"제발 그러지 마세요, 원수 동지…."
쿠즈네초프가 자신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흐멜니츠키로부터의 전화가 울렸다.
"외출하셨습니까,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수화기 너머에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두 번이나 전화했었습니다만… 아, 세묜 마하일로비치네에 계셨다고요. 어떠셨습니까?… 예, 부됸니께선 참 강인한 분이시죠. 그와 함께 있으면 마치 영웅이 된 것 같지 않습니까…" 얘기를 주고받던 흐멜니츠키는 공식적인 전달을 끝으로 말하고 통화를 종료했다. "10시까지 사무실로 오십시오."
간단한 아침 식사를 마친 쿠즈네초프는 서둘러 국방인민위원회로 향했다. 키가 크고 날씬하고 얼굴에 선한 미소를 띠고 있는 보로실로프 원수가 즉시 그를 맞이해줬다. 악수를 나누며 그는 유쾌하게 물었다.
"스페인이 그렇게나 마음에 들었나?"
"예, 원수 동지. 많이 배웠습니다." 쿠즈네초프는 신중하게 답을 골랐다.
"앉게나,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간략하게 보고해 주게. 아, 먼저 우리 의용군들이 스페인에서 어떻게 싸우고 있는지 알려줄 수 있나? 어제 저녁 내내 셰몬 부됸니와 함께 있었다지. 그가 내게 전화를 걸어 자네가 영웅이라고, 기병대 소속이 아닌 것을 안타까워 하더군…." 보로실로프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래서, 우리 병사들은 어떤가, 그들 중에 영웅이 있었나?"
"농담이시죠, 인민위원 동지." 쿠즈네초프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가 사라졌다. "스페인에 간 의용군들 모두가 영웅입니다."
보로실로프는 노트에 무언가를 적으며 조용히 쿠즈네초프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다 쿠즈네초프가 전차병 드미트리 파블로프와 파일럿 야코프 스무쉬케비치의 이름을 언급하자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그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파블로프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야코프 스무쉬케비치와는 지속적으로 소통했었습니다. 하늘에서 그의 부대가 공화당을 위해 무기를 수송하는 우리를 안전하게 호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어난 공중 전투에서도 놀라운 일을 보여줬습니다. 한 번은 그가 전투기를 수송하던 우리 산초 아우구스틴 수송선에 폭탄을 투하하려는 반군 비행기 두 대를 격추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 파블로프와 스무쉬케비치에게 고마워해야겠군." 보로실로프가 말했다.
(그러나 보로실로프는 매우 위선적으로 행동했다. 소비에트연방영웅이자 서부 전선 사령관이었던 육군 장군 파블로프가 1941년에 총살당한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는 스탈린의 측근들에 의해 반역죄로 기소되었고 '철의 인민위원회'는 그를 지켜주지 않았다. 소비에트연방영웅 훈장을 두 번이나 수여받았던 스무쉬케비치 항공 중장 또한 같은 해에 베리야의 측근들에 의해 반역죄로 기소되어 총살당했다. - 작가 A.Z.)
쿠즈네초프가 보고를 마치자 보로실로프가 말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스페인에서 훌륭하게 일해줬지만 자네가 그곳에 다시 갈 일은 없을 거네. 소치로 가서 좀 쉬다가 돌아오면 어디로 배치할지 결정하지. 스페인 혁명전쟁에 적극 참여한 공로로 중앙 집행위원회의 법령에 따라 그대는 1월 3일에 레닌 훈장, 6월 21일에 적기 훈장을 수여받았으니 알아두게나. 훈장은 새로운 근무지로 떠나기 전에 받게 될 거네."
"그렇게나 받을 줄 몰랐습니다…."
"충분히 받을 자격 있으니 겸손 떨지 말게나."
쿠즈네초프는 소치에서 쉬지 않아도 되었다. 휴가 다섯째 날 그는 즉시 모스크바로 오라는 흐멜니츠키의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루돌프 파블로비치?" 서둘러 국방 인민위원회에 도착한 쿠즈네초프가 물었다.
"귀하가 태평양 함대 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것 말고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 흐멜니츠키가 웃으면서 말했다. "소치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극동에 눈이 내리기 전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불렀습니다."
" ...! 감사합니다!"
쿠즈네초프는 진급에 매우 기뻐했다. 이전에 태평양 함대를 지휘했던 1급 함대사령관 빅토로프를 만나러 가면서 속으로 노래를 부를 정도였다. 쿠즈네초프는 빅토로프가 태평양 함대에 대해 알려주고, 어디서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는지,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알려주기를 바랐지만 빅토로프는 그런 말은 전혀 해주지 않았다. 쿠즈네초프는 훗날 '허심탄회한 대화가 잘되지 않았다' 라고 회상했다. 그는 급한 일이 있다며 쿠즈네초프를 갈레르에게 보냈다. 쿠즈네초프에겐 친형 같은 해군 참모총장 레프 미하일로비치 갈레르는 밤늦게까지 태평양 함대의 함선과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쿠즈네초프는 보로실로프와 만났다.
"훈장은 잘 받았나?"
"아직 못 받았습니다. 13시에 오라고 하더군요."
보로실로프는 쿠즈네초프에게 태평양 함대엔 아직 규율이 잡혀있지 않으니 잘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태평양 함대는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가까워야 하네. 거기서 자네가 하는 모든 행동이 평가될 것이고 나는 자네가 거기서 정말로 잘 해내기를 바라네. 이반 쿠즈미치 코자노프가 말한대로 그대는 젊고 힘이 넘치고 바다와 배를 사랑하지 않나. 따로 질문 있나?"
"잠시 레닌그라드에 들려도 되겠습니까? 거기서 해군 사관학교 졸업 동기들과 만남을 가지려고 합니다."
"음 그래, 그거 괜찮군. 2주 줄 테니 알아서 하고 극동으로 가게나."
"감사합니다, 원수 동지! 실망하실 일 없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쿠즈네초프가 기뻐하며 말했다.
"만약 실패한다면 엄중하게 책임을 묻지!" 보로실로프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쿠즈네초프는 9월 말에 블라디보스톡 태평양 함대 사령부에 도착해 함대 사령관 키레예프를 만날 수 있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만나서 반갑군!" 그는 담배 케이스를 내밀면서 물었다. "피겠나?"
"감사합니다만 지금은 사양하겠습니다…."
그들은 훈련, 함선과 잠수함, 지휘관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허락해 주신다면 내일 아침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습니다. 해변, 만, 부두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좋네. 돌아와서 다가오는 훈련에 대해 이야기하지." 키레예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아침에 쿠즈네초프가 탄 순찰선이 출항했다. 바다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조용했고 수면을 덮은 청백색 안개 끝에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마치 여름의 세바스토폴 같군. 아니, 훨씬 더 아름다워….' 쿠즈네초프는 황홀한 풍경에 빠져들었다. 그가 바다에서 본 모든 것들이 인상적이었고 저녁에 블라디보스톡에 돌아왔을 때 쿠즈네초프는 함대가 겪고있는 모든 문제를 최대한 빨리 조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있었다. 키레예프가 소년처럼 웃으면서 물었다.
"뭐 본 거 있나?"
"모든 것을 보았습니다, 사령관 동지. 만, 곶, 해협…. 이곳이 이렇게나 아름다운지 몰랐고 광활한 바다는 숨이 멎을 정도였습니다."
늦은 밤 쿠즈네초프는 집으로 돌아와 일기를 적었다. [극동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커졌다. 연해주, 사할린, 캄차카… 이 거대한 '우리 도시'들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 깨달았다…. 나는 세계 여러 곳을 가봤지만 극동보다 더 웅장한 곳은 없었다. 또한 해군으로서 함대 기지로 삼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군사 위원회 위원인 볼코프가 사무실로 들어섰다. 키는 작지만 어깨가 넓고 개방적이며 성품이 좋은 사람이었다.
"야코프 바실리예비치, 이쪽은 이번에 부사령관으로 온 쿠즈네초프일세." 키레예프가 쿠즈네초프를 소개해 주며 말했다.
"아아, 해군사관학교 위원으로 있을 때부터 그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습니다. 최고의 생도였죠." 볼코프가 기쁘게 쿠즈네초프와 악수했다. "임명을 축하하네! 극동은 살기 좋은 곳이지… 그런데 자네, 살이 조금 빠진 것 같군."
"예, 조금…." 쿠즈네초프는 민망스러웠다. "불타는 스페인에서 지내다 와서 그렇습니다. 날씨가 매우 덥더군요…."
"그래, 거기서 어떻게 싸웠나?" 볼코프가 앉아 물었다.
"스페인에서 훈장 두 개를 받았더군요. 아시다시피 훈장은 공짜로 주어지지 않죠, 야코프 바실리예비치."
키레예프가 대신 대답했다.
"정면에서 파시스트들을 본 건가?" 볼코프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웃었다.
"보는 것뿐만 아니라 바다에서 그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키레예프는 이어지는 쿠즈네초프의 경험담을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이야기가 끝나자 볼코프가 말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스페인에서 잘 지냈다니 다행이군. 해전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쌓았으니 이제 소매를 걷어붙이고 일을 할 차례네. 자네의 기술과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걸세. 그리고 참 때맞춰 도착했어. 이제 가을 훈련의 시작이네." 볼코프는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마저 말했다. "세르게이 라조{라조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1894-1920) 적백내전 영웅)가 떠오르는군. 그는 여기서 영웅적으로 죽었네. 그는 죽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지. [내가 지금 서있는 이 러시아 땅을 위해 우리는 죽을 것이고 누구에게도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여기서 복무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네. 자네를 무너트릴 수도 있어." 키레예프가 우려스럽게 말했다.
"두렵지 않습니다!" 쿠즈네초프는 강한 의지를 내보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저는 이미 바다에서 맞고 부러지고 폭풍을 겪고 뜨거운 태양을 견뎌냈습니다.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세르게이 라조의 말을 명예롭게 따르고 절대 이 땅에서 도망치지 않을 것입니다!"
쿠즈네초프가 겪은 모든 일들이 이따금씩 그를 괴롭혔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의 일. 이제 쿠즈네초프는 인민위원이 돼서 해군 문제에 관여하고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나홋카로 상업 항구를 이전하기도 했다. 쿠즈네초프는 또한 레닌그라드를 방문하고 발트해 함대의 상황을 조사한 뒤 함대의 주요 기지를 핀란드 만 입구에 더 가까운 탈린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즈다노프에게 전달했다.
"설명해 보게."
"아시다시피 함대 본부가 크론슈타트에 있기 때문에 발트 함대 관리가 다소 복잡합니다. 전쟁이 발발하면 함선, 특히 잠수함의 작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본부가 탈린으로 이전하면 리예파야, 리가, 탈린, 항코에 군사 기지를 두고 있는 발트함대의 작전 범위가 더 넓어질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군, 이거라면 스탈린도 승인해 주시겠지.' 즈다노프는 그렇게 생각하며 자신은 왜 진작 이런 걸 떠올리지 못했는지 씁쓸해했다.
"다른 건 없나?"
'예,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쿠즈네초프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말했다. "지금 말하는 건 샤포시니코프 참모총장께 보고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건가?"
"드네프르 함대의 주 기지를 핀스크로 이전하는 것입니다. 운영상으로 더 좋을 것입니다!"
"두 가지 모두 마음에 드는군. 스탈린 동지가 좋아하실 거라고 확신하네. 오늘 밤에 같이 스탈린께 이 아이디어에 대해 말하러 가지…."
스탈린은 쿠즈네초프의 제안을 흔쾌히 승인했다. 그는 심지어 '해군의 젊은 인민위원이 함대의 전투 준비 태세를 강화하기 위해 올바른 길을 찾고있다' 라며 쿠즈네초프를 칭찬했다.
"그대의 새로운 제안이 기대되는군, 쿠즈네초프 동지. 세계는 불안정하고 우리는 붉은 군대와 해군을 강화해야 하네. 적이 공격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들의 능력과 취약점을 연구하고 경계해야 함을 잊지말게."
스탈린의 말은 쿠즈네초프에게 깊은 인상을 줬고 다른 계획에서도 그를 지지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9월 중순, 갈레르가 발트해와 폴란드 지도를 들고 쿠즈네초프에 찾아왔다.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습니다. 다음은 어디일 거 같습니까?"
"아마 노르웨이와 덴마크겠죠…." 쿠즈네초프는 말문이 막혔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국경군을 책임지고 있는 마슬레니코프 NKVD 서장이 '매우 중요한 문제'로 만나자고 하는 요청이었다.
"귀찮게 하고 싶지 않으니 빠르게 급한 문제만 해결하고 가겠습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어서 오게, 이반 이바노비치."
갈레르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 마슬레니코프가 도착했다. 그는 키가 크고 얼굴이 넓었으며 회색 눈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슨 일인가, 이반 이바노비치?" 쿠즈네초프는 미소를 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저희 국경 수비대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서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드네프르군 소함대의 도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소함대는 국경 지역에서 어떻게 운용됩니까? 저는 당신과 군의 이동을 조율해야 합니다. 서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해방하기 위한 작전이 곧 시작될 예정입니다…."
'거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나?' 쿠즈네초프는 훗날 회상했다. 이것은 처음 들어보는 소식이었고 쿠즈네초프는 자신의 부대가 어떤 상황인지 파악도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쿠즈네초프는 함대를 확인하고 즉시 국경 수비대에게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마슬레니코프와 약속한 뒤 그가 떠나자마자 몰로토프 위원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했다.
"바로 오게."
쿠즈네초프는 몰로토프에게 왜 해군 인민위원회가 드네프르군 소함대가 작전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는지 물었지만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쿠즈네초프는 몰로토프가 작전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스탈린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그는 너무 바빠 만날 수도 없었다. 나중에 스탈린에게 군사 활동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했다고 불평하자 스탈린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필요한 경우엔 그들이 그대에게도 알려주겠지."
어쨌든 쿠즈네초프는 해군 인민위원으로서 일을 해야 했다. 그는 해군 참모차장 알라푸조프 제독을 드네페르 소함대에 급히 보내 그 자리에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인민위원회에 보고할 것을 명령했다. 그다음 즉시 마슬레니코프에게 전화해 얘기했다.
"이반 이바노비치, 소함대의 함선들은 국경 수비대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할 거네."
드네페르군 소함대의 함선은 서부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해방에 참여해 붉은 군대와 국경 수비대를 지원하면서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아침에 쿠즈네초프가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스탈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조선산업위원 테보시얀을 아나?"
"안 그래도 내일 만나기로 했습니다. 한시바삐 함선들이 필요한데 거북이 속도로 배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 너무 느려." 스탈린이 화를 내며 말했다. "어제 테보시얀과 만났는데 함대에 순양함이나 잠수함 중 무엇이 먼저 필요한지 확인해달라고 했네."
"둘 다 필요합니다만…."
그러나 스탈린은 이미 전화를 끊은 후였다. 쿠즈네초프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갈레르 제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레프 미하일로비치, 좀 와주시겠습니까."
해군 참모총장 갈레르는 폭넓은 복무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19년 크라스나야 고르카 요새에서 볼셰비키에 대항하는 반란이 일어났을 때 전함 '안드레이 페르보즈바니'를 지휘하며 진압했고 내전 이후 발트함대의 재건을 이끌었다.
"무슨 일입니까?" 갈레르가 눈을 반짝이며 들어왔다.
"특별한 건 아닙니다, 레프 미하일로비치. 새 함선 건조에 논의하기 위해 내일 아침 테보시얀을 만나러 같이 가주시겠습니까."
"그럼 가서 수첩 좀 가져오겠습니다, 거기에 테보시얀에게 물어봐야 할 게 다 적혀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두 사람은 두 시간 동안 테보시얀과 이야기하면서 그가 이야기가 잘 통하고 해군에 대한 호의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는 해군을 사랑합니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당신도 그렇죠... 그래서 하는 말인데 스탈린 동지는 지금 해군에 호의적이니까 우리가 무엇을 결정하든 승인해 줄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절 설득할 줄 아시는군요, 이반 페도로비치." 쿠즈네초프가 미소를 지으면서 서류 파일을 갈레르에게 건네주었다. "당신과 해군의 미래에 대한 토론에 함께 참여할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유감입니다. 이제 우리는 전함과 대형 순양함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볼 때가 되었습니다."
쿠즈네초프가 언급한 토론은 무클레비치가 붉은 함대 수장이었을 때 열렸으며 과학자, 관리자, 디자이너 및 산업 전문가들이 참석했었다. 당시 무클레비치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우리는 바다를 지배하기 위한 것이 아닌 방어를 위한 다양한 함선과 잠수함을 건조해야 합니다. 따라서 전함과 대형 순양함을 건조하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훗날 쿠즈네초프가 태평양 함대의 사령관이 되었을 때, 또 다른 해군 사령관 오를로프가 당 중앙 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전함과 대형 순양함, 항공모함 1척으로 구성된 10년 건조 계획을 제출했다. 그러나 계획 실행은 전쟁 발발로 인해 무산됐고 쿠즈네초프는 여기까지가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붉은 광장에서 열린 노동절 퍼레이드는 인산인해였다. 모두가 행복한 표정이었고 날씨도 좋았다. 아침은 조용하고 바람도 불지 않았으며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보기 좋게 떠있었다. 해군 인민위원 쿠즈네초프는 다른 군 지휘관들과 함께 레닌 영묘 단상에 서있었는데, 레닌그라드 프룬제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행진할 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박수를 받았고 스탈린도 박수를 치면서 말했다.
"훌륭한 지휘관들을 양성하는 좋은 학교라고 보로실로프에게 들었네. 자네도 저곳 출신 이랬나?"
"예, 1926년에 졸업했습니다. 표트르 대제가 설립한 학교라고 들었습니다."
"그럼 200년이 넘었다는 건가?" 스탈린이 놀라워했다.
"예 그렇습니다!"
그 후 쿠즈네초프는 한동안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부터 생각한 것입니다만, 해군의 날을 제정해서 널리 기념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날을 계기로 우리 인민들이 해군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떠십니까?"
"좋은 생각이군." 스탈린이 동의했다. "한번 생각해 보겠네..."
5월 연휴 직후 쿠즈네초프는 몰로토프와 함께 함대를 감독하는 당 중앙위원회 즈다노프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니콜라이 게라시모비치, 해군의 날 제정을 위해 당에 긴급 문건을 올리게나.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와 얘기했네. 스탈린한테 그런 제안을 하면서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 했다 이건가? 좋아, 화 안 났네. 내일 아침 내 책상 위에 문서나 올려놓고 가게."
"예, 감사합니다 안드레이 알렉산드로비치!" 쿠즈네초프가 기뻐하면서 대답했다.
이 대화를 나누고 이틀 후 프라우다 신문에서 해군의 날 제정 소식을 읽었을 때 쿠즈네초프는 너무 놀라 뒤로 넘어갈 뻔했다. 특히나 쿠즈네초프는 한 대목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해군의 날을 공휴일로 만들고 모든 기관의 해군과 관련된 업무 상태를 검토한다.] 이 문서에 몰로토프와 스탈린 서기장이 서명했다.
"신문 봤습니까?" 갈레르가 흥분한 채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물었다. "해군의 날이라니! 어떻게 한 겁니까?"
쿠즈네초프가 행복하게 웃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노동절 퍼레이드에서 스탈린이 해군 생도들의 행진을 칭찬하시고 기분이 좋아 보이셔서 한번 얘기해 본 것뿐입니다."
5월 연휴가 끝나고 쿠즈네초프는 세바스토폴로 향했다. 배들이 예프파토리야 부두에 정박되어 있었고 멀리서 쿠즈네초프는 4년 전 스페인으로 떠나느라 헤어진 그의 아름다운 순양함 '체르보나 우크라이나'를 발견했다. 배가 육지에 다가오자 쿠즈네초프는 급하게 갑판 위로 올라갔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순양함의 지휘관이 경례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인민위원 동지, 순양함의 장병들이 동지께서 도착하신 것을 환영하기 위해 모여있습니다."
"그래, 알겠네, 알겠어... 잠시 함선 좀 산책해 봐도 되겠나?"
"동행할까요?"
"그럴 필요 없네. 난 여기 구석구석을 잘 아니..."
'상태가 왜 저러시지?' 지휘관이 쿠즈네초프를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체르보나 우크라이나는 항상 내 안에 살아있었어...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겠지만...'
(쿠즈네초프의 상태는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 1970년, 부됸니 원수의 부관이었던 이 소설의 저자이자 필자는 부됸니로부터 쿠즈네초프 제독을 만나 바코브카에 있는 다챠에 초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세 번이나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네. 해군의 날이 곧이지? 자네도 해군 출신이니 가서 니콜라이를 만나보게. 그 없이는 돌아올 생각 말고!" 부됸니 원수의 요청을 쿠즈네초프에게 전하자 그는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마침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다챠에 가있으니 당장 가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원수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쿠즈네초프와 함께 부됸니의 다챠에 가자 원수가 현관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됸니가 쿠즈네초프를 껴안으면서 말했다.
"이게 얼마 만인가, 많이 보고 싶었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묜 미하일로비치."
"은퇴할 때 몇 살이었지?"
"51살이었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얘기 좀 하지"
그들이 나란히 앉았다.
"말도 말게, 니키타에게 당한 거지... 내 동료 게오르기 주코프가 그 일에 한 손 보탰다는 것이 유감이네. 내가 주코프에게 불명예스러운 제독을 본 적 있는지 물으니 '저도 흐루쇼프에게 당했습니다!' 라고 하더군. 아무튼 니콜라이, 어떻게 지냈나? 자네 책은 참 진실하더군. 자서전 '전야에(Накануне)'에서 어떤 장성들보다 스탈린에 대해 정직하게 써놨어. 니키타 흐루쇼프는 최선을 다해 스탈린을 비방했는데 말이야. 바보 취급도 정도껏 해야지! 뚫린 입이라고 아주 헛소리만 내뱉더군!"
부됸니가 분개했다가 다시 진정했다.
"그래, 전쟁은 모두에게 힘들었지. 하지만 결국 히틀러가 아니라 우리가 이겼네! 니콜라이 자네도 힘들지 않았나? 솔직히 말해보게, 전선에서 운 적도 있나?"
쿠즈네초프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1942년 독일군이 세바스토폴에서 순양함 체르보나 우크라이나를 침몰시켰을 때였습니다. 옥챠브리스키 제독이 제게 보고했을 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네." 부됸니가 콧수염을 씰룩거렸다. "내가 전선 사령관이었을 때인 42년 여름, 이사코프 제독이 구축함 '타슈켄트'가 세바스토폴에서 부상자들을 구출했다고 보고했네. 탈출하는 내내 파시스트에게 폭격을 당했지만 꿋꿋하게 버텼다지! 나는 이사코프에게 활약한 장병들에게 훈장과 메달을 수여하라고 하고 다음날 노보로시스크에 도착했네. '타슈켄트'가 아주 늠름히 부두에 있더군. 포탑에 올라가 성공적인 작전을 한 해군들을 축하하며 부상자들과 배를 구해준 것에 감사했었네.")
세바스토폴 일정을 마친 쿠즈네초프는 배를 건조하고 있는 니콜라예프 조선소에 방문하여 가능한 한 빨리 구축함을 만들어달라고 촉구했다. 6월에 쿠즈네초프는 아르한겔스크와 폴랴르니의 북방 함대를 방문하고 7월 말 즈다노프와 함께 발트해 해군 훈련에 참가했다. 쿠즈네초프가 함대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수록 그는 해안 부대의 전투 준비 태세를 더 높여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꼈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쿠즈네초프는 '해군 작전 준비 태세 3단계'를 도입했는데 이는 해군의 모든 함선과 함대를 단 몇시간 만에 준비시켜 적의 기습을 격퇴하고 작전 수행을 위해 즉시 바다에 함대를 배치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블라디미르 체르나빈 제독은 당시 젊은 해군 인민위원 쿠즈네초프가 만든 이 시스템을 '역사적'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해군 인민위원회는 해군 사령부가 독립적으로 작전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전쟁 전 기습에 대비하기 위해 함대를 사전에 준비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같이 읽어보기
📅 해군의 날
День Военно-Морского Флота — Википедия
Материал из Википедии — свободной энциклопедии День Вое́нно-Морско́го Фло́та — памятный день Военно-Морского Флота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ru.wikipedia.org
해군 인민위원 니콜라이 쿠즈네초프가 제안해 1939년 처음으로 기념되기 시작했다. 위키에서는 매년 7월 24일에 기념하다 80년에 7월 마지막 일요일로 변경된 것처럼 설명되어 있는데, 당시 기록과 회고록을 보면 그전에도 7월 마지막 일요일마다 기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년 중 다른 모든 날보다 7월 마지막 일요일인 해군의 날을 가장 사랑하고 존중했다. 특히 이 날 쿠즈네초프의 집은 많은 손님들로 붐볐다. 종종 해군의 날이 쿠즈네초프의 생일(7월24일)과 겹칠 때도 있었다. 그런 날 손님이 쿠즈네초프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올리려고 하면 당사자인 쿠즈네초프가 단호하게 거부하고 해군을 위해 첫 번째 건배를 올렸다. 해군의 날 첫 번째 건배는 항상 우리나라 해군을 위한 것이었다.
ㅡ 니콜라이 페도로비치 카리토노프, 책 [급선회: 제독의 노트에서] 中
🙍♂️ 레프 미하일로비치 갈레르 (레오 율리우스 알렉산더 필립 폰 할러)
Галлер, Лев Михайлович — Википедия
Материал из Википедии — свободной энциклопедии В Википедии есть статьи о других людях с такой фамилией, см. Галлер. Лев Миха́йлович Га́ллер
ru.wikipedia.org
독일계 귀족 집안 출신 갈레르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 쿠즈네초프가 태어난 다음 해인 1905년 해군에 임관해 복무를 시작했다. 혼란스러운 1차대전과 혁명기간을 겪으며 해군에 헌신한 그는 1932-1937년 동안 발트함대 사령관을 지내며 발트함대의 기반을 다시 세웠다. 대조국전쟁 기간 동안엔 함대 건설 및 군비를 맡으면서 새로운 함선 개발과 건조를 이끌었다.
1947년 12월 19일 쿠즈네초프, 알라푸조프, 스테파노프와 함께 영국과 미국에 해군 기밀 자료를 넘겼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투옥 중 1950년 2월 20일 소련 내무부 카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같은 해 7월 12일 사망한다. 사후 그의 행방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고 1999년 10월 카잔 아르스코에 묘지에 기념비가 세워졌다.
아마 미혼으로 가족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묘비를 세워줄 사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레프 미하일로비치는 우리를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가족이 없었고,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어느 여름날 테니스를 치고 있을 때 레프 미하일로비치가 유모 대신 유모차를 끌며 우리 아들 니콜라샤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모습을 목격했었다. 참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ㅡ 베라 니콜라예브나 쿠즈네초바, 책 [해군 사령관 - 저자 라이사 바실리예브나 쿠즈네초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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